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그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달 26일 강연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우그룹 출신 인사로 구성된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이날 대우그룹 해체 전말에 대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증언이 담긴 대화록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의 저자인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를 초청해 연 강연회에서다.

이날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특별포럼'에서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해체에 대한 잘못된 과거는 바로 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이 직접 입장을 밝히면서 정치권·재계를 중심으로 그와 대우그룹의 상징인 '세계경영'에 대한 재평가 논란이 달아오르고 있다. 외환위기를 불러일으킨 '재벌 체제의 모순을 응축한 후진적 경영모델'이란 비판과 선진국에 뒤처진 한국적 상황에서 해외 네트워크·정보 경쟁력을 가지려 시도한 의미 있는 모델이란 옹호가 맞서 있다.

한때 재계 서열 2위 대우그룹의 수장이었고 고속성장 시기의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인물이란 점 때문에 김 전 회장의 이번 입장 발표는 논란이 될 조짐이다.

한편 지난 2일 거제상공회의소는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출판기념회를 오는 25일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이 책에서 '거제는 마음의 고향이다'고 남다른 애정을 보여 온 김 전 회장이 이날 행사에 참석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논란의 인물' 김 전 회장을 국제화·황제식 독단경영 등 키워드로 재조명해 본다.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5년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면서 대우그룹 해체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화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김우중 전 회장이 사업을 시작한 1970년대 우리나라에는 국제화·세계화라는 단어가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비로소 세계화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지만 김 전 회장은 그보다 20여 년 전에 국제화·세계화를 전제로 사업을 벌인 첫 번째 인물이다. 국제경영학은 다국적기업의 해외 직접투자의 성공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양학자들이 만든 표준이론은 그 기업이 자금력·기술력·규모의 경제·브랜드 같은 내부적인 독점능력을 갖고 있어야만 해외에 진출해 현지의 어려운 상황과 현지 정부의 규제를 극복해낸다는 것이다. 다분히 선진국의 논리다.

김 전 회장은 기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후진국과 개도국 등에 진출해 성공할 수 있다는 모델을 만들어야 했다. 대우자동차는 해외에 진출하면서 현대자동차보다 빨리 해외에 10개 정도의 거점을 찾아 각각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폴란드 인도 미국 루마니아 등에 생산기지를 설립할 계획을 세우고 그 중 5~6군데는 행동에 옮겼다. 해외투자를 시작하자 관심조차 보이지 않던 세계적인 부품회사들이 갑자기 대우에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또 해외 생산기지가 만들어지자 시장도 그만큼 생겨났고, 언론·소비자에 알려지면서 브랜드 가치가 올라갔다. 해외투자를 하지 않으면 형성되지 않았을 능력이 생겨났다.

김 전 회장에 옹호적인 입장을 견지한 지역의 한 경제인은 "대우 모델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국제화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자금조달의 투명성에 문제가 생겨 국제화로 가는 것이 망가진 것"이라고 말했다.

워커홀릭, 황제식 독단경영

대우의 세계경영에는 두 가지 특징적인 요소가 있다. 하나는 만들어 팔 물건이 하이테크가 아니라 '미들테크(중급기술)'라고 상정한 점이다. 대우전자의 '탱크주의'로 잘 표현됐듯 첨단의 복잡한 제품이 아닌 잘할 수 있는 평범한 중급기술의 중저가 제품으로 특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물건을 내다팔 시장은 선진국이 아닌 이제 막 궤도에 오르는 중국·인도 등 틈새시장으로 잡고 해외거점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전략이다. 두 가지 전략적 측면에서 '장사꾼'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전략을 추구하는 자금 조달과 같은 기반이 얼마나 있었을까? 대우자동차는 5년 만에 해외공장을 15개나 만들었는데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폴란드 법인인 FSO만 가동률 60%대였고 나머지는 20% 안팎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손실을 경상이익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돼 영업전략을 뒷받침 할 자금조달 기능이 취약해졌다.

두 번째 문제는 기업의 의사결정과 지배구조 문제를 꼽을 수 있다. 흔히 김우중 회장을 '워커홀릭'(일중독자)이라고 하는데 이는 어떤 면에서 대우그룹의 모든 정보와 의사결정을 김 전 회장 한 사람이 독점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김 전 회장에 비판론적인 지역 한 인사는 "의사결정권의 독점, 황제식 독단경영의 지배구조 문제가 심각했다. 세계경영 전략은 제품 전략이나 마케팅 전략에선 탁월했지만 재무·지배구조에서 허술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대우만 미워했다?

1997년에 겪은 경제위기는 우리나라가 후진국에서 개도국까지 올때 사용한 재벌체제를 독립경영·전문경영 체제로 대체해 나갈 절호의 기회였다. 대우그룹은 그 기회를 결과적으로 실천했다.

후진국에서 개도국까지 올 때와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갈 때의 성장모델과 기업 역할은 다르다. 개도국은 자본의 집적을 통한 투자가 중요하지만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갈 때는 경쟁력이다. 재벌체제는 근본적으로 경쟁을 회피하고 경쟁자를 없앰으로써 독점력을 유지하는 성향이 있다.

옹호론적인 지역의 한 경제인은 "대우그룹에서 살아남은 기업의 시가총액을 따져보면 5배 가량 늘었다. 독립경영의 성과다. 대우그룹은 분산됐지만 기업들은 존재한다. 김 전 회장이 사라진 뒤 갈 길로 간 것이다"고 주장했다.

대우 사태 당시 한국경제와 대우그룹을 지칭한 유행어가 '자전거 경제'였다. 달리는 자전거처럼 끊임없이 차입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못하는 구조였다. '강시기업'이라 할만큼 재무적으로 디폴트(빚 갚을 능력 상실) 상태였다.

1998년 10월 일본 노무라증권이 대우그룹에 공개적으로 경고했고 그 이전에도 많은 이들이 대우그룹을 디폴트 상태로 봤다. 당시 대우그룹의 총자산은 100조원에 이르렀다.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800억 달러 수준이다. 2000년 부도난 미국 에너지기업 엔론의 700억 달러보다 큰 규모다. 워크아웃(채무재조정) 역사상 세계 최대다.

비판론적인 한 인사는 "최대 규모의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정부 당국이 법률적 근거를 못 갖춘 측면이 있지만 그것 때문에 대우가 망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언급했다. 

김 전 회장에 옹호적인 인사들은 당시 '강시' 상태였던 회사가 대우만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똑같이 일관성 있게 잣대를 댔더라면 더 많은 기업들이 무너졌을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 인사들은 "명쾌한 기준과 철저한 적용에 따라 똑같은 기준으로 똑같이 처리했어야 하는데 일부 기업은 죽고 어떤 기업은 살려놓으니 억울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면서 "법·제도적 기준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소수 인원이 처리한 것은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적자금 투입' 어떻게 볼 것인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90여개 기업 중 대우계열은 12개였다. 대우계열 워크아웃은 회사 분할 방식이란 특징이 있다. 부실자산을 잔존법인으로 몰아넣고 수익을 내는 부분을 별도 회사로 쪼개는 방식이다.

새로 만드는 회사에는 부채 탕감, 채무상환유예, 출자전환 등을 통해 업체별로 많게는 5조원, 적게는 2조원의 금융지원을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대우건설·대우조선 등이 살아났다.

비판론적인 한 인사는 "대우 계열사들이 재무적으로 회생하는 데 30조원을 웃도는 공적자금이 투입됐다"면서 "공적자금 투입과 종업원들의 희생을 거쳐 살아난 것이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의 장점 중 하나는 탁월한 역량의 사람들을 많이 모았다는 것이다. 잠재적인 역량이 있었다. 다만 김 전 회장이 모든 걸 혼자서 좌지우지하며 의사결정을 하다보니 문제가 됐다.

옹호론적인 한 인사는 "대우맨들은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을 필요가 없다"면서 "전문경영인들은 이제 하고싶은 경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창업자의 신화 보여준 모범사례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을 재계 서열 2위까지 그룹을 키워 젊은이들에게 창업자의 신화를 보여준 입지전적 인물이다. 1980년대 들어 우리 사회에서 신설기업이 한국을 대표하는 예가 없어졌다. 계열을 분리하면서 나온 건 있지만 빌 게이츠처럼 성장하는 예를 찾아볼 수 없다.

김 전 회장은 극과 극의 인물이다. 우리 사회에 긍정적 모델을 제시해 준 동시에 하지말아야 할 일도 했다. 평균치 하나로 평가할 인물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공과를 분명히 가려 공과 모두에서 배우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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