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는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기고 떠나갔다. 그가 방한 기간 내에 보여 주었던 모습들이 우리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엄청난 무언가를 보여주거나 들려 준 게 아니라 그 동안 우리가 망각한 채 살아왔던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덕목들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한다.

교황이 떠난 직후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에 완전 합의를 이루어 낸 것도 이해 당사자는 물론이고 지켜보는 국민들의 변화하고자 하는 기운들이 모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 여기고 싶다.

방한의 목적이나 의전상 파격에 따른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있지만 설령 그것이 퍼포먼스일지라도 관객 입장에선 매우 감동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역대 교황들이 보여 주지 못한 자기 혁신에 따른 실천이 일찌감치 세계인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사제 성범죄 문제가 있을 때마다 바티칸은 늘 사제 개인의 일탈로 치부했다. 독신의 수행생활로 인해 신부와 수녀들의 동성애나 아동성추행 문제가 전설처럼 떠돌았지만 근자에 세계 곳곳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실제 사건화되고 이로 인한 소송비와 합의금으로 파산하는 교구가 속출하면서 바티칸은 권위와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바티칸 내부와 마피아 연루 의혹에도 칼을 댔다. 역대 교황 최초로 마피아를 파문했고 돈세탁, 횡령, 마피아 연계설에 휩싸인 바티칸은행 경영진을 싹 바꾸고 계좌 1600개도 폐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존립을 뒤흔든 이러한 문제에 진심으로 접근했고 사과했고 실상을 있는 그대로 공개했다. 말이 쉽지 목숨을 걸고 내린 결단이다.

4박5일간 세월호 참사 유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해고자 등 우리 사회 각계의 약자를 어루만진 교황의 여운은 짙고 울림은 깊다.

교회에 가면 찬송가를 부르고 절에 가면 찬불가를 부른다. 음악적으로 보면 우리말 구조와 서양음악의 리듬 구조가 일치하지 않아서 찬송가에 수록되어 있는 노래들이 어색한 경우가 많았다.

복음성가나 성가요의 창작이 활성화되면서 음악적으로 자연스럽고 완성도 높은 곡들이 많아졌지만 찬불가의 경우 아직은 작업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는 영역이다. 예배를 보는 공간에서 음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예술 중 모방성이 가장 강한 것이 음악이라고 했다.

모방성이 강하다는 것은 동화작용이 강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지향하는 방향으로 일체감을 조성하는 데 용이하다는 말이다. 이런 모방성의 특징으로 말미암아 성가대나 찬불단은 종교활동의 영역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개신교의 경우, 음악전문 목회자가 따로 있을 정도로.

석기시대 사람들은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동굴 속에서 노래했다고 한다. 인류가 진화하듯이 동굴이 교회로 진화해 왔을 것이다. 4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서양 중세시대는 기독교가 강력한 힘을 가졌었던 시기다. 교회의 첨탑만큼이나 권위와 위엄으로 예배의식이 진행되었으며 그런 의식 중 성가의 역할은 엄청난 것이었다.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성가의 원형은 그레고리오 성가이다. 일체의 장식음이나 음악적 수사를 걷어낸 채 동일한 멜로디를 다함께 노래하는 그레고리오성가의 특징은 극히 단순하고 심지어 무료해 보일 정도로 반복성을 가지고 있지만 요즘처럼 복잡한 화음과 리듬 속에서 오히려 인간과 음악의 원형을 찾는듯한 청량감을 준다. 그리고 느린듯 또박또박 깊이를 충분히 토해내는 부분에선 힐링이 되기까지 한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수도사들에게서 사랑받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가 영감을 받아 만들고 통일해 놓은 것을 그레고리오 2세(715~731)가 편찬을 마무리 한 것이다. 장장 100여년의 세월에 걸쳐 완성된 것인데 이것은 카톨릭 뿐만 아니라 서양음악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선 혁신과 개혁이 넘쳐난다. 하지만 목숨과 지위를 걸고 나서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 허전함을 영화 '명량'에서 달래고 교황에게서 위로 받고자 하는지 모를 일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른바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도 개혁의 칼을 뽑았다가 즉위 33일 만에 급사한 요한 바로로 1세의 독살설에 그저 무신경 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레고리오 성가처럼 담백하고 자기목숨을 초월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마지막 여정에 국내 종교지도자들에게 당부한 말이 깊게 울린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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