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철봉 칼럼위원

▲ 문철봉 거제YMCA 사무총장
페이스북에서 가슴 한가득 푸근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접한다. 이야기의 간략은 이러하다. 서울의 어느 시장 주변 골목길, 푸성귀와 옥수수 몇 개를 담은 할머니의 카트를 어린 손자가 대신 끌고 가다가 길가에 주차해 놓은 외제 승용차에 부딪혔다.

이를 보게 된 어느 젊은이가 차주인의 전화번호를 찾아 알렸고 전화를 받고 달려온 차주인은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할머니께 먼저 공손히 머리 숙여 사과를 했다.

"제가 차를 주차장에 주차해야 하는데 길가에 주차해서 다니시는 길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이 글을 읽으면서 작금의 주변일이 떠올랐다. 지역의 한 할머니가 의지붙이 없이 살면서 집 가까운 밭을 얻어 10년이 넘도록 부쳐 먹고 사셨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땅이 수용됐으니 출입할 수 없다는 팻말과 함께 철조망이 쳐졌고 할머니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땅주인을 찾아가 사정을 했다. 할머니 말을 들은 터주인도 깜짝 놀라 알아보겠다고 했다. 알아보니 자신이 터를 판지 일 년도 지나지 않아 공공용지로 수용됐고 산 사람은 보상을 다 받았다는 것이다. 땅주인은 할머니가 너무 안쓰러워 보상 받은 주인을 찾아가 사정해 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보상받은 주인을 찾아갔다온 할머니가 울면서 전한 말은 "10년 넘게 공짜로 농사 붙여먹도록 했으면 고맙다 해야지 어디 와서 돈 달라 하요? 다시는 얼씬도 하지마소"였다.

알고 보니 공공용지로 수용되는 정보를 미리 알고 땅을 사서 보상을 받은 것인데 경작보상비를 가로채고도 마치 자신이 10년 넘게 공짜로 농사짓게 하고 은혜를 다 베푼 듯이 하는 몰상식과 몰염치인 자였다.

또 얼마 전에는 사실에서 벗어난 제보성기사로 모기관장을 음해하고도 사과의 글 한 줄 없는 몰상식과 기고 또는 제보자가 지레 짐작해서 올린 글이 잘못된 내용임을 확인하고도 사과는 커녕 되레 뻔뻔한 얼굴을 내미는 것도 본다. 특히 정도와 예의, 정의나 참다움의 가치는 아예 무시하고 자신의 이해와 유불리에 따라 더 역성을 들고 나오는 몰염치들이다.

주변의 이런 사람들일수록 번쩍번쩍한 외제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가난한 사람의 쪽박을 차버리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선 상대의 인권이나 존엄은 한 치도 상관 않음과 자신의 이해에 따라 그간의 선의나 관계는 깡그리 무시하는 저 몰염치하고 몰상식한 것들이 앞의 '외제승용차의 주인'에 비추어 선명히 되새겨지고 대비되는 것이다. 지겨운 것은 이런 작자들이 보기 싫은데도 눈에 띄는 주변인이라는 점이다.

작금에 잘못 되어지는 모든 일들이 이러한 몰염치와 몰상식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더 씁쓸하다. 수백 명의 새파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책임지지 않는 정부, 귀한 아들들이 고귀한 국방의무가 아니라 비열한 폭력에 죽었는데도 숨기기만 하는 국방부, 자식이 억울하게 죽어 그 진상과 책임자를 가려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 달라는 유족들에게 말하지도 바라지도 않은 대학입학특혜와 의사자지정을 요구한다며 바가지를 씌우는 여당의 정치권, 어느 하나 상식적인 것이 없는데도 '이전에는 이보다도 더한 사건과 죽음이 줄줄이 사탕이고 여기저기 범람하니 이제는 그만 해라. 세월호는 지워버리고 경제를 살리자'한다. 아예 몰상식을 상식인체로 하고 살자 한다.

권력이 있거나 돈이 많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 앞에서는 온갖 아양과 손 비비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자신 보다 힘없고 돈 없는 사람에게는 온갖 폭언과 과시로 행세하는, 자신의 부조리함과 잘못을 오히려 무고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몰상식하고 몰염치한 사회, 이 비열하고 저속한 촌스러움이 언제쯤이면 "제가 차를 주차장에 주차해야 하는데 길가에 주차해서 다니시는 길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참된 양식이 상식인 세상으로 살아질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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