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지난 한 주는 각 지자체마다 새로운 단체장의 취임식이 있었다. 원래 취임식은 당선인 신분에서 막강하고 지엄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 받는 단체장의 위치로 공식 전환되는 의식이다.

취임사를 통해 임기 동안의 각오도 밝히고 협조도 구하며 그 동안 도움 준 인사들에 대한 고마움도 표하고 심지어 가족들도 소개하는, 제법 의전적인 틀을 갖추면서도 취임 당사자의 색채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의식인 것이다.  

취임식의 변화는 서울시가 선도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천편일률적이던 관선 시절의 취임식에 변화를 준 것은 1995년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부터인데 민선 1기, 조순 시장이 백범광장을 취임식장으로 삼으면서 시청사를 벗어나는 파격을 보이자 뒤이어 고건·이명박·오세훈 시장도 세종문화회관을 취임식장으로 이용하게 됐다.

하지만 장소가 오픈되다 보니 각종 문화행사를 비롯한 부대행사가 끼어들면서 규모가 커지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다른 지자체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시민 입장에선 참신함보다는 수천만원씩 소요되는 예산과 허례가 더 거슬렸는지 크게 호응을 받지 못했다.

지난 서울시장 보선에서 박원순 시장은 시청 집무실에서 온라인 취임식을 열었는데 전례없는 파격 형식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

박 시장이 시장실을 소개한 후 혼자 애국가를 부르고 취임선서와 취임사를 하는 모습이 서울시 인터넷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생중계 됐는데 시민과의 소통을 컨셉으로 한 기획이었고 연장선상에서 이번 취임식도 뉴미디어를 활용한 시민 눈높이 취임식으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이번엔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지자체에서도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한다거나 여러 기관단체와 함께 거리청소를 한다거나 무료 급식소에서 배식봉사를 한다거나 독도에 들어가 취임선서를 하며 영토수호 의지를 다진다거나 하는 등 각자의 지역과 사정에 맞는 기획으로 이색 취임식의 향연이라 불러도 좋을만큼 다채로운 취임식을 볼 수 있었다.

우리지역도 권민호 시장이 직원조례에 맞춰 비용이 들지않는 차분한 취임식을 가져 잔잔한 박수를 받았다.

대관식은 왕관을 왕의 머리에 얹어서 왕위에 올랐음을 공표하는 의식이었다. 성직자가 국왕의 머리에 성유(聖油)를 부어 이른바 왕권신수의 권위를 세워주는 방식이었는데 요즘에도 권력자의 마음속에는 왕권에 대한 동경이 있는지, 2012년 5월 있었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세 번째 취임식은 황제의 대관식처럼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었다.

반면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취임사에서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물어라"는 명연설을 남겨 맹추위 속의 취임식을 한마음으로 녹여낸 걸로 유명하다.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은 1804년 12월 노트르담 성당에서 열렸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계급이 없는 사회를 이끄는 혁명가인 나폴레옹을 위해 베토벤은 표지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바친다'라고 적은 곡을 작곡했으나 이 대관식으로 베토벤은 그의 영웅을 잃게 된다. 교향곡 3번 '영웅'은 그렇게 과거완료형의 제목으로 지금까지 전해진다.

이 대관식을 묘사한 고전주의미술의 창시자 다비드도 프랑스혁명 이후 나폴레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아니 완전히 관변 화가였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뛰어난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과 관련해서는 많은 과장과 왜곡을 통해 우상화 작업의 선두에 섰던 것이다. 

그런 다비드도 시민혁명으로 겨우 왕정을 무너뜨렸는데 다시 황제에 오르겠다는 나폴레옹의 선택에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부탁으로 대관식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그림은 나폴레옹이 스스로 대관한 후에 황후가 될 조제핀에게 관을 씌워주는 광경으로 곁에 있는 교황 피우스 7세가 대관을 축복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화면구성은 나폴레옹의 권력이 시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다비드의 마지막 양심이자 고뇌라고 전해지고 있다.

권력은 내가 획득한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역임을 취임식에 선 분들이 가슴에 새겨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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