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인자/계룡수필 회원

온 식구가 허둥댄다. 늦잠을 잤기 때문이다. 지나쳐버린 시간을 두고 잠시 멍하니 앉았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두서가 없어서이다. 여태껏 이런 적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오류가 난 것일까.

분명 알람시간을 맞춰놓고 재확인까지 해두었는데. 머리맡에 둔 자명종소리를 듣지 못할 만큼 둔하지 않은데. 엉망이다. 여러 발자국소리가 섞여 산란하기만 한다.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아이가 책가방을 챙겨든다.

아침을 거른 것은 물론이다. 남편 역시 늦어진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아이를 태우고 나갔으니, 빈속이 허전할 게다. 그저 미안한 마음에 할 말을 잊는다.

다들 나가고 혼자다. 평소 같으면 이 시각은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려 잠시 눈을 붙이는 여유를 갖는 때다. 한바탕 수선에 잠이 달아났는지 눈만 말똥말똥해진다. 원인을 찾아야 한다. 언뜻 스치는 게 있어 시계부터 살핀다.

역시 자명종이 문제였다. 새벽 세시를 넘긴 시간에 정지되어 있다. 잠들기 전까지도 멀쩡하던 초침이 멈춰 있으니 필시 건전지가 다 되었을 것이다.

에너지를 공급받은 초침이 째깍거리며 다시 돌기 시작한다. 시계추도 똑딱거리며 제 역할에 박차를 가한다. 나더러 정지되어 있던 일상을 빨리 시작하라 한다. 정신없어 빠뜨린 일도 챙기라고 명령한다.

시계에 의지하던 나는 그의 멈춤으로 잠시 무력상태에 빠졌었다. 시계는 다시 일상을 되찾았건만 난 기운이 하나도 없다. 새삼 피로가 몰려온다. 마치 에너지가 빠져나가 멈춘 시계바늘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요즘 몸이 안 좋다. 치아의 상태가 좋지 않아 내내 치료중이다. 붓고 피나고 아리던 것을 놔두어 결국 발치를 해야 하는 단계까지 간 것이다.

치과에 가면 체면 불구하고 어린애처럼 울고 싶어진다. 기계음소리만 들어도 등골에 진땀이 흐르고 무서워 치과 가는 날은 미리부터 두통에 시달리는 것이다.

조금만 신중하게 생각했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을 그냥 방치하다 보니 그 옆의 치아까지 못쓰게 만들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앞에 두고서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으니 위장 장애까지 생겼다.

버리려던 건전지를 본다. 기능이 다하면 부품을 교체하면 그만인 저 기계들처럼 내 몸의 한 부분도 고장이 나면 바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성 위염에 시달리는 위도 바꾸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붓고 저려서 고생하는데 그것도 바꾸고, 그보다 더 급한 이 치아도 몽땅 바꾸어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단단하고 가지런한 치아로 몽땅 바꾸고 거울 앞에서 뽐내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이런 세상이 온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아픈 이를 통증이 없이 단번에 뽑아버리고 대형 마트에 가서 사온 새 치아를 바꿔 끼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 쓴 건전지는 새 것으로 교체할 수가 있지만 사람의 몸은 못쓰게 되었다 해도 바꿀 수가 없다.

급변하는 의술의 발달로 장기 이식도 일부 가능하다지만, 그게 그리 쉬우며 모든 환자에게 다 통하는 일이던가.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나이를 먹어가니 이젠 내 몸에 대해서도 조심스럽다.

여기저기 덜컥거리며 고장이 나려해 조금만 이상이 느껴져도 무섭고 두려움이 앞선다.

나에게 에너지 왕성한 건전지가 필요한데. 혹여 많은 시간이 지나면 우리 몸의 부분 부분을 슈퍼에서 사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 때까지 나의 삶이 지탱해 준다면 혜택을 누릴 수 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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