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거제시장 후보자의 KBS TV 토론에 권민호 후보가 불참했다. 권후보는 '시민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자신의 명의로 된 보도자료에서 불참의 이유는 다른 시장후보의 중대한 도덕적 결함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방송토론·대담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공직자의 도덕성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도덕적 결함이 있는 후보와는 거제의 미래를 놓고 토론하기가 부끄럽고 또한 대화 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 대선의 경우 후보 간의 TV토론에 따라 여론과 민심이 움직이면서 지지율이 요동치기 때문에 관전 포인트의 백미는 TV토론이라는데 별 이의가 없다. 따라서 후보자들은 다른 어떤 선거운동 방법보다도 TV토론을 우선순위에 두고 준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반전의 승부수를 던지기도 한다.

1960년 정치의 달인 닉슨이 신출내기 케네디에게 패배한 것은 TV 토론 탓이었고, 2000년 대선 때 조지 W 부시 후보와 앨 고어 후보와의 TV토론은, 토론의 달인 고어가 풍부한 식견을 바탕으로 지나치게 공격적인 이미지를 구사하면서 촌스러운 부시에 비해 되레 신뢰성을 잃으면서 패배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TV토론을 잘 한 후보가 선거에서도 이기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의 경우 토론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 문화적 특성과 TV토론과 관계없이 기존 지지후보에 대한 '밀착효과' 때문에 지지율 변화에 큰 효과가 없다. 그리고 '무늬만 토론'일 뿐 인터뷰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토론의 진수는 무엇보다도 주요 쟁점에 대하여 각자의 의견차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그런데 이 쟁점의 토론이 상대를 흠집 내거나 공격의 빌미로 삼다보니 정책 비교는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만다. 특히 방송토론회는 너무나 답답한 형식과 1초까지도 정확하게 지키려는 시간적 제한에 얽매이다 보니 무차별적인 네거티브 식의 질문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번 KBS TV토론에 거제시장 선거 권민호 후보가 불참한 진실한 속내는 무엇인가? 선관위에서 주관하는 토론회에 정당한 사유 없이 불참하면 과태료 처분 등의 조치가 뒤따를 것을 감수하면서도 불참한 것은 TV토론이 당락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데 있다.

박빙의 승부 속에 TV토론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다면 부동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라도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이런 이유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 오만함에 대하여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다음으로 권후보의 주장대로 '선거정국을 틈타 타 후보들의 정치적 공세가 점점 거세지고 각종 의혹을 부풀리고 있는' 상황에서 TV토론 역시 말 잘하는 사람이 주목 받고 공격하는 사람이 수비하는 사람보다 인기를 끌게 된다는 유·불리의 셈법에 따라 TV토론에 불참했다면 이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의 토론문화 가운데 착각하고 있는 하나가 누가 토론에 이겼다는 식의 평가다.

토론이란 '어떤 문제에 대하여 각자의 의견을 내세워 그것의 정당함을 논하는 과정'으로 지고 이김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을 찾는데 있다. 토론의 과정에서 말 잘하고 따지기 잘하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말은 어눌하지만 그 속에 겸손과 배려의 덕목을 보여주는 사람이 더 신뢰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비록 정치적 공세가 쏟아질 것이 뻔하지만 진실한 자세로 후보를 설득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를 설득하겠다는 마음으로 참석해서야 옳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TV토론 불참이 권 후보의 주장처럼 단순히 도덕적 결함이 있는 후보와의 토론거부이기 이전에 도덕적 결함을 가진 두 상대 후보를 동시에 교묘하게 흠집 낼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면 이건 참으로 잘못된 일이다. 백 마디의 말보다 TV토론에 불참하는 것이 더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정략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이유로 불참한다는 것은 전략적 꼼수로 오해될 소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TV토론회는 시민들에게 인물 검증 및 정책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정정당당한 정책대결을 기대했던 시민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주고만 권 후보의 TV토론 불참은 이유야 어찌됐든 씁쓸하기 그지없다. TV방송토론만이 시민알권리와 시정평가의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겸손한 자세로 그 자리에 나와 시민들에게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고 다른 후보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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