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논설위원

제(齊)나라 위왕 8년에 초나라가 쳐들어오자 외교술에 뛰어났던 순우곤(淳于)이 조나라에 가서 정병 10만과 병거 1천승의 파병을 받아내자 초나라는 놀라 군대를 철수해 버렸다. 이에 왕은 순우곤을 위한 주연 자리에서 "그대는 어느 정도 마셔야 취하오?"하고 물었다. 이에 순우곤이 "신(臣)은 한 되를 마시고도 취하고, 한 섬을 마시고도 취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왕이 계시는 앞에서 술을 받으면 어려운 자리라 한 되 술로도 취하지만, 은근한 향기를 풍기며 비단 속옷을 풀어 헤친 여인과 밤에 마주 앉아 술을 마시면 신은 한 섬이라도 마실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실 수 있는 한계치' 또는 '마신 후 다음날 아침 평소처럼 일어나 생활할 수 있는 양'을 주량(酒量)이라고 한다. 다른 정의로는 '술을 마신 후 주변 사람들한테 민폐를 끼치지 않을 정도의 양''자신이 행동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까지 마실 수 있는 양'으로도 본다.

그런데 이런 정의는 판단의 기준이 애매하다. 술 마시고 다음날 생활에 지장이 있나 없냐는 다음날이 되어보아야 알 일이고, 민폐를 끼쳤냐 아니냐는 친구와 술 마실 때와 장인어른과 술 마실 때 조심하는 정도의 차이 때문에 술의 양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보다는 차라리 술을 마시고 얼굴이 빨개지는 그 시점을 주량의 한계로 잡으면 좋을 것 같다. 술 마시고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혈액 순환이 잘되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알콜분해효소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알콜 거부현상이다. 따라서 이 시점을 주량으로 잡으면 건강에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배우 윤문식씨가 채널A 토크쇼 '쇼킹' 녹화에서 주량이 어느 정도 되느냐는 질문에 "35살 때 만리포에 놀러가서 혼자서 소주 36병까지 먹어봤다"는데, 이만큼은 아니지만 '꽃보다 할배'의 막내 백일섭이 "고단한 하루하루 끝나고 저녁에 많은 폭주는 아니라도 반주 정도는 마시며 살아야지, 인생 뭐 있어?"라는 그의 한마디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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