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 윤성원 거사림 2기 학생회장
만물은 무상(無常)하니 지금 존재하는 것은 인연이 다하면 곧 사라질 것임을 알고 현실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무상(無常)을 터득해 이 세상의 만사에 집착하지 않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말라. 지난 겨울 죽은 듯이 땅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생명체가 시절의 인연이 도래하니 이 땅에서 또 다른 꽃을 피운다. 사라진다고 슬퍼하지 말자. 더 찬란한 꽃을 준비해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니 인연이 있다 해도 새로운 것일 것이다.

나아가 지금 사라진 것은 다시 뒤돌아 온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무성하더니 가을에는 열매를 맺는다. 가을이 돼 서리가 내리더니 잎이 시들고 겨울이 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런데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없는데 어찌하여 봄이 되니 새로운 생명체가 싹이 트고 올라오는가? 인간의 삶도 마찬 가지다. 직위도 힘도 없다 해도 새싹처럼 사람에게는 존재의 힘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잘못된 인연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육신은 비록 생로병사(生老病死)해 사라진 것 같이 보이지만 인연을 만나면 다시 접합한 곳에서 새로운 생을 시작한다. 이런 생사의 윤회는 끝없이 반복하는데 그 가운데는 생명의 근원인 법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법신이 청정하면 그 다음에 탄생하는 색신도 청정할 것이요, 법신이 오염된 망심 속에 갇혀 있으면 밝고 청정한 빛을 잃는다. 오직 우리가 할 일은 나의 법신이 밝은 빛을 내고 향기를 풍길 수 있도록 오염된 마음의 업식(業識)을 정화하는 일을 통해 봉사하고 마음을 청명하게 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기길 무릇 형상이 있는 것는 모두 허망이고 형상 그 너머에 있는 법신을 본다면 그는 부처님 법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다 했다.

우리는 낮에는 유가로 살고 밤에는 도가로 살아가는 삶을 생각해야 한다. 유가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직장이나 가정에 헛됨이 없어야 하고, 도가는 밤에 소유와 인연을 버리고 도인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색신(色身)은 우리가 보이는 현상이요 보이는 것에 잘했다 못했다 소리치는 것이다. 법신(法身)은 우리의 성품(性品)이다. 소리없이 사회에 봉사하고 개인의 마음에 소유를 버리고 밝은 빛을 내고 향기를 풍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철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부처님은 어느 곳에 계시는가?'라고 했다. 상(相)이 있고 구함이 있음을 둘 다 망아(忘我)요, 형상이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곳에 집착함도 한쪽으로 치우친 소유(所有)일 것이다. 소유는 인연을 버리게 할 수 없는 악이다.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에 있다.

모두가 한때일 뿐이지만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답게 살고 싶어한다. 인연을 살아지게 하는 것은 무심이며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에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가 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연을 살게 하는 것이다. 4월의 아름다운 꽃을 자기의 인연이라고 버리지 못하면 여름의 더위를 준비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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