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철봉 칼럼위원

▲ 문철봉 거제YMCA 사무총
송구영신, 지는 해인 계사년인 2013년이 저물고 갑오년인 2014년 새해가 다가온다. 이때가 되면 한 해를 돌아보아 세태를 특징짓는 사자성어와 새로운 해를 기대하고 염원하는 사자성어를 접하게 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이것을 챙겨보는 것이 재미가 있다. 석학들에게 두루 회람하여 최다 공감을 선정하는 방식도 좋지만 고사(古事)에 비춰 지금의 세태를 풀어내고 빗대어내는 사자성어가 매번 무릎을 칠만큼 꼭 같이 동감되기 때문이다.

2013년 올해는 어떻게 결론하고 새해를 어떻게 기대했을까?  먼저 전국의 교수 622명 중 32.7%인 204명이 선정한 이 해를 특징짓는 사자성어를 접한다. 도행역시(倒行逆施)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이다.

올해 한반도 상황은 서로 선을 긋고 서로를 비판하는 상황이 많이 벌어졌고 어느 쪽 편에서 보든 한 편에서 다른 편의 행동을 보면 순리를 거슬러 행동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 선정 이유다.

이 도행역시는 중국 '사기' 중 '오자서(伍子胥) 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오자서는 원래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그의 아버지와 형이 초나라 평왕에 의해 살해를 당하자 복수심을 품고 떠돌다 오나라 합려 왕에게 발탁돼 초나라를 정복하며 복수에 성공한다.

이때 오자서가 이미 무덤에 묻혀 있던 평왕의 시신을 꺼내 300번이나 매질을 하자 이에 친구였던 신포서(申包胥)가 복수 치고는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고 비판했고 오자서는 "일모도원(日暮途遠) 도행역시(倒行逆施)다"라고 한데서 유래된 말이다. 즉 "해는 지는데 갈 길은 멀어 순리를 거슬러 행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변명이다.

이 말의 선정 배경으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후퇴시키는 정책·인사가 고집되는 것을 염려하고 경계한다"고 중앙대 육영수 교수는 밝혔다.

다음 22.5%의 지지를 받은 두 번째 것은 새로울 것 전혀 없이 지루한 정쟁만으로 쓸데없는 싸움만 한다는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격이라는 의미의 와각지쟁(蝸角之爭)이고 19.4%의 세 번째는 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힌다는 의미인 이가난진(以假亂眞)이라고 한다.

2013년을 특징 지은 사자성어, 이 기막힌 선정에 또 무릎을 치지만 입맛이 쓰다. 나라님의 공약인 '경제민주화', '노인공경 기초연금' 등이 순리를 거슬러 도행역시의 저 변명으로 없던 말로 하고 나 아닌 남의 말에는 귀를 닫아 버렸으니 당연한 결과다. 대충만 짚어 봐도 이렇다.

대선 때의 정부여당 측의 '알바댓글'과 '밀양 송전탑 건설로 인한 갈등' '윤창중 성추행 의혹사건', '전두환 미납 추징금 1672억원 사건',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사건', '이석기 의원 사건', '철도파업'까지 도행역시와 와각지쟁, 이가난진이 아닌 것이 없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지역의 일들만도 그렇다.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가 친일반역자 김백일을 6.25동란의 공로자라며 동상을 세우고선 시 행정의 철거령에 대응해 승소하는 일이 생겨났고, 현대산업개발의 범법행위가 재심의 되어져 처벌이 경감됐다. 이렇게 이 모두가 도행역시한 것이다.

2012년을 맞으며 희망하기는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이었지만 마무리하는 사자성어는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거세개탁'(擧世皆濁) 즉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어렵다" 이었다.

2013년을 맞으며 희망하기는 제구포신(除舊布新)으로 '낡은 것은 버리고 새 것을 받아들이자'며 "사람들은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낡은 것은 버리고 새 것을 받아들이되, 낡은 것의 가치도 다시 생각하고 새 것의 폐단도 미리 봐야 한다. 이것이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마음이며 진정한 제구포신의 정신이다"고 이종묵 서울대 교수가 말하고 바랐건만 우리 살아온 이 한해의 일들이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 도행역시만 수두룩하니 입안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이 씁쓸함을 지우기 위해서 또 새로운 한해의 희망을 찾아본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13년째인 교수신문의 연말 사자성어 선정은 지나온 그 해를 특징지어 짓는 '올해의 사장성어'와 다가올 새해를 희망하는 '연초 희망의 사자성어'로 짝을 이루는데 올해는 희망하는 것이 없다. 세태가 어지러워 교수들조차 희망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러면 서민들은 어떻게 앞날을 살아낼까 싶다. 제발 아니길 바란다. 누구는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유신으로 회귀한다고 한다. 남과 북이 화해해 나가기는 커녕 허문 담을 다시 쌓는다고 한다. 대화와 타협의 노사정이 아니라 강제와 채찍이라 한다. 가치와 논리는 없고 편 가르기와 낙인찍기만 있다고 한다. 언제 적 말들인지 모를 말들이 이렇게 되살아 움직인다.

아무리 그래도 가는 해는 아쉬워하고 오는 새해는 더 좋을 것이라 희망하며 즐거워하는 송구영신이여야 하지 않은가. 거제시민 우리 모두는 '아듀 2013 계사년이여! 2014 갑오년 해피 뉴이어!'하면 좋겠다. 부정을 긍정으로, 어둠을 밝음으로, 차별을 평등으로, 분쟁과 갈등을 화해와 평화로 희망하고 바꿔갈 2014년 새해를 다 같이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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