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위(衛)나라 영공(靈公) 때 미자하(彌子瑕)는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어느 날 미자하는 어머니가 위독하자 임금의 허락도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그 당시 법에 임금의 수레를 몰래 타면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刑)이란 엄한 벌을 내렸다. 그런데도 임금은 벌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실로 효성이 지극하도다. 월형도 두려워 않다니”하며 미자하를 칭찬했다.

또 하루는 임금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복숭아가 맛있다며 먹던 반쪽을 왕에게 주었다. 임금은 이 또한 칭찬하기를 “대단한 충성심이로다. 맛있는 복숭아를 자기가 먹지 않고 나에게 주다니 ”라며 흡족해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미자하에 대한 애정이 식기 시작했다. 어느 날 임금의 방을 청소하다가 화병 하나를 깨뜨리는 사소한 일을 문제 삼아 임금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저 놈은 과인 몰래 수레를 탄 적이 있고, 제가 먹던 복숭아를 과인에게 먹인 일도 있다.”라며 지난날 칭찬했던 일들까지 고스란히 죄목이 되어 돌아왔다. 한비자(韓非子)의 세난편(說難篇)에 나오는 여도지죄(餘桃之罪)의 고사이다.

북한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권력의 2인자였던 장성택이 반역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김일성의 사위요, 김정일의 집권에 도움을 주었고, 김정은의 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그였지만 최고 존엄 앞에서의 오만불손이 사형 죄목의 이유가 된다는 것이 여도죄를 방불케 한다.

삐딱하게 앉은 죄, 건성건성 박수친 죄, 왼새끼를 꼰 죄, 김정은보다 앞질러 걸어간 죄, 김정은보다 먼저 악수한 손을 내린 죄, 김정은이 연설할 때 다른 쪽을 쳐다본 죄, 김정은 뒤에 걸어가면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죄, 김정은처럼 손을 뒷짐 지고 서 있은 죄. 이게 죄가 되는 희한한 세상이다.

영국여왕의 얼굴이 있는 우표를 거꾸로 붙이면 죄, 프랑스에서는 돼지에게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죄, 포르투칼에서는 바다에서 소변을 보면 죄, 두바이에서는 남이 보는데서 키스하면 죄 등은 북한의 장성택에게 붙인 죄목보다는 훨씬 이유 있는 죄목일 것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