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회 전국체전 요트 금메달 해성고 김정욱 학생
해성고 요트부 창단 이래 1학년 첫 금메달 획득

1984년 전국 최초로 고등학교 윈드서핑부를 창단한 해성고등학교(교장 진선진 신부)가 지난달 인천에서 열린 제94회 전국체전에서 대형사고(?)를 쳤다. 전국 각 시·도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들이 출전하는 전국체전에서 쟁쟁한 고교 2~3학년생을 제치고 고교 1년생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이다.

파란의 주인공은 해성고 1학년에 재학 중인 김정욱(17) 군. 혜성처럼 나타나 전국 고교생 강자들을 물리치는 이변을 연출한 김 군은 해성고 윈드서핑부의 미래다.

언뜻 보기에는 작고 호리호리한 체격이지만, 전국을 재패한 선수임을 입증하기라도 하는 듯 강인한 기운이 그의 몸 전체에서 풍겨났다. 윈드서핑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돛을 조작하고, 센터보드에 발생하는 수중 저항의 차이로 방향을 정해 다이나믹한 질주를 즐길 수 있는 레저스포츠다. 때문에 바람의 세기는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큰 요인 중 하나다.

60kg 윈드서핑 라이트급인 김 군은 바람이 약하거나 중간 정도로 불 때 여타 선수들보다 더 빠른 스피드로 파도를 가를 수 있다는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때마침 이번에 출전한 전국체전에서도 약한 바람이 불어와 경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렸다고 한다. 행운의 여신이 김 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바람이 마치 내 편인 거 같았다. 스타트도 빨라 앞서있는 선수들을 제치며 전진해나갔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은 코치님의 도움으로 1마크 2마크를 돌며 나아갔다."

맨 선두에서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 가장 짜릿한 쾌감이 느껴진다는 김 군은 배를 탈 때가 가장 즐겁다며 환하게 웃었다.

체육특기생으로 해성고에 들어오게 된 김 군은 이번이 대회 첫 우승이라 더욱 뜻 깊다. 김해가 본 고향인 김 군은 중 1때 아버지를 따라 일운면 와현으로 이사를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 군은 운동을 좋아하고 축구선수가 꿈이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운명처럼 윈드서핑이라는 새로운 종목이 그의 눈앞에 다가온다. 김 군은 "첫 시작부터 뛰어난 소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이뤄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친분이 있었던 김병원 거제요트학교장의 권유로 중1 여름방학 때 처음 윈드서핑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세포중학교 2학년이었던 2011년 4월의 봄, 부산에서 치러진 대통령기 전국요트대회에 처음 선수로 출전하게 된 김 군은 첫 시합에 대한 긴장과 경험부족으로 실력발휘를 하지 못한다. 그때의 아쉬움을 자양분으로 삼아 그 이후 꾸준히 중등부 테크노 대회에 출전해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이번 대회 우승 비결을 묻자 중학교와는 다른 체계적 교육 덕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장문영 감독과 서진영 코치의 지도 아래 선진국 선수들의 훈련법으로 운동에 매진했고, 지적한 문제점을 고치면서 실력이 많이 향상됐다고 했다.

오전에는 정규 수업, 오후부터는 바다에 나가 2~3시간 훈련을 하는 것이 그의 하루일과다. 달리기와 같은 기초체력 훈련은 물론 태국 등지에서 실시하는 전지훈련에 참가해 두 달여 동안 부족한 실력을 쌓는데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해성고 요트부 9명의 선수들 모두 예상치 못했던 김 군의 이번 금메달 수상을 축하하며 함께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김 군은 "학교 선배이자 국가대표 이태훈 선수가 롤 모델"이라면서 "대회에서 뒤처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배울 점이 많은 훌륭한 선수라고 느꼈다"며 자신 또한 국가대표가 꿈이라고 밝혔다.

정수만 교감은 "체육특기생 학생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한 명 한 명과 자주 상담하며 교장선생님과 머리를 맞대어 어떻게 지원 할 것인지 고민한다"면서 "아이들이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체육인으로 성장해 사회에 나가서도 인격적으로 흠결이 없는 국가대표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교육지론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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