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배 전 거제군수

최근 어느 정당 대선 주자들의 토론회가 있었다. 한 주자는 “5년 후에 국민소득 5만 불이 되도록 하겠다” 하고, 또 한 주자는 “4만불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가슴 벅찬 고무적인 공약들이 아닐 수 없다. 아쉽게도 구체적인 방안 제시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글쎄 그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한 나라의 발전이란 그렇게 간단히 되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국민소득 1만 불을 올려놓고 2만 불 고지를 넘기지 못한 채 힘겨워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지금 우리의 국민소득이 대략 1만6천 불이 된다고 하지만 기실은 한화(韓貨)의 환율 인상으로 인한 명목상의 수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국민소득 2만 불을 넘긴다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은 아닌 것 같다.

2만 불 고지(2만 불을 넘겨야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다고 한다)를 넘기기 위해서는 대선 주자들의 간단한 공약 하나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정 2만 불의 고지를 넘기고 명실공히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려면 정부와 기업들의 환골탈퇴(換骨脫退)하는 노력은 물론 국민들의 뼈를 깎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일본과 IMF 금융대란을 겪은 우리를 한 번 비교해보자. 이제 일본은 지난 10년의 어려움을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들이 허리띠 졸라매고 노력하여 고비를 넘겼을 뿐 아니라, 대학 졸업생들이 평균 일곱 개의 일자리를 놓고 하나를 골라야 하는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태백’이다, ‘삼팔선’이다, ‘사오정’이다, ‘오륙도’다 하여 헤매고 있지 않은가.

지난 어려웠던 시절을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처럼 일본은 개미 같이, 우리는 베짱이 같이 10년 세월을 흘러 보낸 것은 아닐까.

못 산다고 아우성치는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아직도 흥청망청하는 것 같다. 골프채를 둘러메고 공항에 장사진을 치는 군상들, 날개 돋친 사치품매장, 웬만큼 이름난 식당에는 대기표를 받아들고 장사진을 이루는 외식 꾼들, 이것이 우리의 딱한 오늘의 자화상이다.

국민들만 그런가. 많은 기업들이 봇짐을 싸들고 외국으로 나가는가 하면 일부 기업들은 회계의 불투명, 위법한 재산 상속, 폭력 보복행위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공기업 감사들과 어느 구청장들이 벌인 호화관광의 작태 등 도대체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선진국들은 세금 줄이고 정부지출 축소에 총력을 기울여 지난 4년간 OECD의 조세부담률은 평균 0.7%포인트, 정부지출은 0.4%포인트를 각각 줄였다. 그래서 국가부채는 평균 6.6%포인트 증가에 그쳤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4년간 국민의 세금부담은 1.2%포인트, 정부지출은 3.5%포인트가 늘어 만성적 적자재정과 국가부채(GDP 대비 13.9%포인트)가 급증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 가지고서야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요원한 것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정부는 작은 정부로 군살을 빼고 경제를 활성화시키지 않고서는 21세기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은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에서 살아남기조차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위정자들만 욕하면서 지난날 70년대와 80년대의 향수에 젖어 있는 것 같다.

70년대 몸으로 때워 이룩한 경제성장은 지금과 같이 정보산업화와 치열한 경쟁시대에서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못되며, 더더구나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쏟아지는 듯이 흥청대던 80년대와 같은 시절은 오지도 않을 것이고 와서도 안 될 것이다.

게(蟹)들도 성장을 하려면 일생동안 껍질을 열네댓 번 정도 벗어야 그 몸집이 커진다고 한다. 껍질을 벗는 과정에서 스스로 벗지 못하는 놈은 바동거리다 끝내는 살아남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게들의 성장에는 커지는 몸집에 맞추어 구각(舊殼)을 벗어야 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면 우리도 구태의연한 의식구조(意識構造)를 탈피하고 몸집에 알맞은 선진 의식구조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진정 우리가 이대로 머물러 급기야는 천민민주주의 그리고 천민자본주의 국가로 추락하지 않으려면 먼저 정부, 기업 그리고 국민들의 일대 혁명적인 정신개조운동의 전개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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