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귀식 칼럼위원

▲ 민귀식 새장승포교회 목사

인간학의 보고(寶庫)라고 불려지고 있는 중국의 고대 역사책인《사기(史記)》에 보면 ‘계포일낙(季布一諾)’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계포가 허락한 한마디의 말”이라는 뜻으로 약속에 대한 절대적 신뢰성을 대변해 주는 말입니다. 다시 표현하면 한 번 한 약속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킨다고 하는 약속의 절대성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중국 초나라 장수 계포(季布)에게서 유래된 말입니다. 계포에게는 두 동생(계심과 장공)이 있었습니다. 동생 계심은 힘이 아주 센 전하장사였고 장공은 머리가 아주 비상해 동네 사람들로부터 늘 칭찬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계포는 두 동생에 비하여 내세울 만한 힘과 지혜와 재주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러한 계포가 대인관계 속에서 약속의 중요성을 깨닫고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킬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어느 날 한 번은 마을 앞에 있는 큰 호수에서 다음날 만나 헤엄을 쳐서 강을 건너가기로 친구들과 약속을 한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친구들과 약속한 시간에 뜻하지 않게 비바람이 몰아치는 궂은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계포의 친구들은 약속한 장소에 나가지 않았고 오직 계포만이 그 장수에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시간 친구들이 그 호숫가를 찾았을 때 그때까지 계포는 약속한 자리에 서서 비를 흠뻑 맞은 채로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모습을 목격하게 된 친구들은 계포를 향하여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인정했고 그 소문은 온 동네방네로 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계포가 성장하여 한(漢)나라 유방과 초(楚)나라 항우(項羽)가 천하를 걸고 한판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 계포가 항우의 장수로 출전해서 몇 차례 유방을 괴롭혔는데, 항우가 패망을 하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게 되자 계포의 목에 천금의 현상금이 걸려 쫓기는 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계포를 신고하거나 돈을 받고 넘겨주지 않았으며 그를 숨겨주고 감싸주었다고 합니다. 도리어 그를 인재로 천거하여 유방의 조정에서 큰 벼슬(중랑장(中郎將))을 얻어 나라를 섬기게 되었는데 그 이후에 나온 말이 계포일낙(季布一諾)이라는 말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세상 만인 앞에서 공적인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휴지 버리듯이 버리고 수용할 수 없는 괴변을 널어놓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선거를 앞두고는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면서 모든 국민들 앞에서 이렇게 섬기고 저렇게 받들겠노라고 공공연하게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잡아야 하는 정권을 쥐고 난 이후에는 손바닥 뒤집듯이 그 약속을 뒤집어 버리고 변명에 변명을 일삼는 정치인들, ‘결코 나는 시민의 뜻을 변절시키지 않겠습니다.’ 철석같이 약속하고 맹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과 맹세를 저버리고 실리를 쫓아가면서도 엉뚱한 변명을 널어놓는 부끄러운 정치인들도 없잖아 우리 사회 속에는 많이 보게 됩니다.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허다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 같은 공수표 약속을 예견이나 하듯 요즈음 초등학교 어린 학생들은 손가락을 걸고 맹약할 때에 그냥 새끼손가락만을 걸고 약속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부터인가 새끼손가락을 건 뒤 약속하는 두 사람은 엄지손가락을 세워서 다시금 불변을 표시하는 ‘도장’을 찍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서로의 손바닥을 맞대어 비비면서 ‘복사’를 하고 그 속사한 손바닥 위에 서로의 사인까지 하고 있는 웃지 못 할 관경과 절차를 우리는 지켜보아야만 하는 현실입니다.

  꺼져가는 심지와 같이 몰락해 가는 고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고려 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선생(1337~1392)은 고려왕조의 마지막을 직시하면서도 불충이군(不忠二君)의 정신으로 일편단심의 충성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씨 조선을 개국하기 이전 이방원이 정몽주선생의 진심을 떠보기 위하여 ‘하여가’라는 시조를 읊으며 함께 조선 개국에 힘을 보태줄 것을 요구하지만 포은선생은 ‘단심가’로 자신의 굳은 절의를 보여 끝내 이방원의 심복인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살해를 당하게 됩니다.

비록 정치적으로 매장을 당하고 살해를 당한다 할지라도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포은선생의 아름다운 정신, 끝까지 약속을 지키는 올곧은 자세, 인류구원을 위하여 치욕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구원자 예수님의 십자가 지도(十字架 之道)의 삶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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