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칼럼위원

▲ 천창수 송진교회 목사
북미대륙 위쪽의 알래스카는 대부분 얼어붙은 땅이기는 하지만 아주 넓고 광활한 땅이다. 이 땅이 지금은 미국의 한 주로 되어 있지만 전에는 러시아의 땅이었다. 1867년에 러시아가 그 당시 돈으로 720만$을 받고 이 땅을 미국에 팔아넘긴 것이다.

러시아에서 볼 때 알래스카는 얼어붙어서 쓸모없는 땅일 뿐만 아니라 바다를 건너야 갈 수 있는 먼 곳에 있는 땅이었다. 국경을 지키자니 군사를 보내야 하는데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쓸모없는 땅이라 생각하고 아주 헐값으로 미국에다 팔아넘겨 버린 것이다.

그런데 막상 팔고나서 보니 그 땅 밑에는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이 있었다. 많은 금이 묻혀 있었고 가스와 또 석유등이 무진장으로 묻혀있는 지하자원의 보고였다. 뿐만 아니라 군사전략상으로도 결정적인 요지가 되었다. 아주 소중하고 귀중한 땅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귀한 땅을 완전히 내버리듯이 팔았던 것이다.
가치를 알아야 한다. 가치를 모르면 소유할 자격이 없고, 빼앗길 수밖에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산다. 시127편에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하나님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면 파수군의 깨어 있음이 헛되다고 했다.

하나님의 복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를 아는 사람이 받는다. 내가 받은 복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지 못하면 복을 버리게 된다.

성경에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파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삭의 가정에 에서와 야곱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하루는 야곱이 죽을 쑤는데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에서는 사냥을 하느라고 아마 하루 종일 들판을 뛰어 다녔던 것 같다. 무척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마침 집에 돌아왔을 때 동생이 팥죽을 쑤고 있었다.

그것을 본 형이 그만 눈이 벌컥 뒤집어졌다. “어서 그것을 내게 좀 달라. 내가 좀 먹어야겠다.” 그러자 야곱은 “형님 좋습니다. 내가 이 팥죽을 드릴 테니까 그 대신에 형이 가진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파십시요” 이렇게 요구를 했다. 말도 되지 않는 요구인데 어리석게도 에서는 여기서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다. 내가 죽게 되었는데 장자의 명분 따위가 무슨 소용 있겠느냐며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

장자의 명분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이어갈 사람을 뜻한다. 두 가지 복이 내포되어 있는데, 하나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요, 또 하나는 신령한 기업을 이어갈 자녀가 되는 것, 즉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이 복을 빌 때 다른 사람이 복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장자의 명분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장자의 명분에는 메시야의 계보를 이어갈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복이 숨겨져 있다. 네 후손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언약관계에서 영적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엄청난 복이요 놀라운 이야기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에서는 이 귀한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다. 에서는 이 귀한 복의 가치를 모르고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던 것이다. 에서에게는 당장 눈에 보이는 팥죽 한 그릇이 귀했지, 장자의 명분에 담긴 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신에게는 무엇이 더 귀하고 중요한가?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질과 인격, 신앙과 성공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 현세적인 것과 영원한 것 중에 무엇이 더 귀한가?

종교개혁자 칼빈은 임종을 앞두고 자리에 누워 로마서 8:18을 수없이 되뇌이며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 신령한 것, 영원한 것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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