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칼럼

윤성원 거제불교거사림 2기 학생회장
한 해가 시작이라 하고 고개 돌리면 벌써 10월 이다 .덥다 춥다 소리치면서! 겨울은 참으로 추웠다. 세상 모두가 얼어붙어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2월이 되자 찬바람 매섭던 매화나무가지에서 매화꽃 봉오리가 붉게 올라왔다. 얼어붙은 땅속에서 햇살을 받고 냉이가 파릇하게 땅을 헤집고 달래도 포기를 증식하여 올라오고 있었다. 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에 있다가 이렇게 나타난 것일까? 시골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은 이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3월이 되니 매화꽃이 피고 곧 매실로 변하였다. 비바람과 햇볕, 그리고 땅기운에 의하여 매실이 굵어지더니 6월 중순에는 싱싱한 청매가 온 나무에 열리더니 6월 하순에는 황매로 변하였다. 무엇이 어디서 와서 이렇게 알찬 황매로 만들었을까?

4월에는 고추 오이 토마토 가지 등을 심었다. 이들의 씨앗은 너무 작아서 손톱으로도 잘 잡히지 않는다. 이들이 자라서 5월이 되면 꽃이 피더니 고추가 열리고 오이가 달린다. 고추는 꽃이 핀 후 일주일 지나면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고 오이는 4~5일이면 팔뚝만큼 자란다.

8월 하순이면 농촌에서는 집집마다 가을채소파종을 한다. 배추와 무는 근본적으로 서늘한 기운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8월15일을 분기점으로 땅에서 서늘한 기운이 올라오고 여름 내 무성하던 풀도 기력을 잃기 시작한다. 이럴 즈음에 무와 배추를 심는다.

지난 9월 초순 경, 김장용 배추는 모종을 사서 심었으며 총각무, 김장용 무, 가을상추, 나물용 배추 등은 씨앗을 뿌렸다. 엊그제 일요일, 일주일 만에 돌아와 보니 배추모종도 잘 자라고, 특히 씨앗을 뿌린 무 상추 등이 파랗게 새싹이 올라와 있다.

어디서 저런 싹이 올라왔을까? 가까이 들어다볼수록 신기하고 대견하다. 저 새싹들은 2개월 후에는 내 다리만큼 큰 무로 자라고 머리만한 배추로 클 것이다. 무엇이 저렇게 큰 무와 배추를 만들어 낸 것일까?

채소씨앗은 일반적으로 너무 작아서 겨우 눈에 보일락 만하다. 땅에 너무 묻으면 싹이 나지 않는다. 자기 몸 두께만큼만 흙을 덮어주어야 싹이 난다. 이들이 어떤 힘으로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서 대지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여 커다란 배추와 무가 될 수 있을까?

이론상으로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씨앗이 적당한 온도와 수분이 있는 땅속에 묻히면 싹이 나고 뿌리를 내려서 점점 크게 된다고.

대지는 영양분과 수분을 주고 하늘은 신선한 공기를 준다. 이런 여건 하에 배추씨앗을 땅에 묻으면 싹이 난다. 이는 그 씨앗의 고유한 성분이 있어서 자기에게 맞는 여건이 주어져서 싹이 난다. 그 환경에 자기에 맞으면 싹이 나서 더욱 큰 채소가 될 것이고 여건이 좋지 못하면 싹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잘 자라지 못하거나 죽어버릴 것이다.

그렇다. 씨앗의 고유한 성분(理)과 환경(相)이 합쳐져서 새로운 생명체이니 채소가 탄생한 것이다. 이것이 一合相이다. 종자가 우량하고 환경이 맞으면 더욱 좋은 배추가 될 것이며 이것은 다시 더욱 좋은 씨앗을 만들 것이다. 반대로 흙이 박토이고 수분을 적기에 얻지 못하면 아주 조악한 열매를 맺고 그 씨앗도 오히려 종전보다 더 열악한 것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다. 비록 지금은 중생이라 할지라도 금생의 내 삶이 진리에 가깝게 산다면 내 영혼이 더욱 순화되고 보다 우량한 아뢰아식으로 거듭날 것이다.

내 인생의 종자가 뿌려질 텃밭을 잘 만들자. 좋은 이웃과 벗들을 사귀어서 삶 자체가 그대로 옥토가 되게 하자. 그리고 성현의 가르침을 받아서 내 영혼의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는 자양분으로 삼자. 금생을 마감할 때, 내 영혼은 보다 나은 아뢰아식으로 거듭 날 것이다.

지금의 내 아뢰아식에 만족하거나 불만하지 말자. 그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내 영혼에 집착하지 말자.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내 영혼도 지속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아뢰아식에서 무겁고 어두운 業識을 씻어내자. 그리고 밝고 투명한 업식을 증식시키자.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삶을 밝고 맑게 살아야한다.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롭게 라는말씀이 생각난다.(眞鏡 崔德圭)

내 삶이 보다 밝고 맑으면 내 영혼도 그렇게 승화되어 가리라. 이렇게 하여 보다 고귀한 영혼을 만든 후, 이를 다음 생으로 넘겨주자. 그래서 우량한 종자(영혼)를 가지고 다음 생을 맞이하자. 이렇게 많은 생을 살다보면 성불할 날이 오겠지. 이것이 내 삶의 일합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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