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희 계룡수필 회원

흔한 반지 하나 끼지 않는다. 언제나 간편한 복장에 운동화 차림. 등에는 배낭을 진다. 만나는 사람마다 산에 가냐 묻는다.

물론 아니다. 평상적인 차림새다. 그러기를 즐기고 편해서 흡족하다. 상가나 결혼식에 가는 게 아니라면 무얼 하러 가든 누굴 만나든 게이지 않는다.

나이를 먹긴 했지만 솔직히 아직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가꾸고 꾸미고 치장을 한다면 한결 돋보일 텐데 내키지 않는다.

물론 자신만만한 것도 아니다. 아름다워지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고나 할까. 해서 무난함과 수수함을 좆다보니 트레이드마크처럼 고착돼 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여자가 아니겠는가. 화장대 서랍 속엔 예쁜 머리핀이 그득하고 화려한 목걸이 귀걸이 액세서리 등도 적잖이 있다. 그뿐이 아니다. 가방도 구두도 그리고 옷가지도  기분에 따라 변화를 둘만큼 충분히 챙겨두고 있다.

아마도 이것들 모두 자외선 결핍으로 창백하다 못해 곰팡이가 필 지경일 게다. 주인 잘못 만나 세상구경 못하니 마냥 가엷다.

비밀 한 가지 털어놓아야겠다. 독자들에게 드리는 선물이다. 집에 홀로 있는 날이면 우리 집은 패션쇼 무대가 된다.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모든 것을 나 혼자 코디하고 연출하고 또 모델이 되어 출연한다. 날씨나 기분에 따라 쇼의 테마를 설정하고 면밀히 선택해서 옷을 고른다.

스카프도 색 맞춰 두르고 옷에 맞게 팔찌 목걸이 귀걸이도 늘어뜨리고 신문지를 방바닥에 깔아 구두를 갖춰 신고 가방까지 어깨에 걸치거나 팔에 낀다.

느낌과 정서가 그날 기분에 맞아 떨어지면 만족이다. 거울 앞에서 워킹을 하고 포즈를 취하면 제법 그럴듯하다. 그러나 뭔가 미흡하면 만족스러울 때까지 고치고 다시 바꾼다.

이런 날은 방안 가득 옷이 널리고 서랍속이 엉망이 되고 신발장이 뒤죽박죽이다. 시간도 만만치 않게 걸려 몇 시간이 훌쩍 지난다.

자연 흘려보낸 시간도 아깝고 몸도 노곤하여 후회하기 일쑤다. 갑자기 방문객이 생기거나 남편의 귀가가 빨라지면 이 난장이 수습 되지 않아 민망해진다. 쑥스러워서 변명으로 둘러댄다.

“간만에 정리를 좀 하렸더니 장난이 아니네.”

때로는 어이없고 한심해서 역정이 나기도 한다. 왜 이런 알 수 없는 짓을 심심치 않게 하는지 스스로도 의문이다. 내 속에 나 말고 또 다른 여자가 살고 있나보다. 그녀는 멋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자임이 분명하다.

아름다움을 위해 시간도 돈도 아깝지 않게 쓸 줄 아는 사치스러운 여자인가 보다. 조금은 튀고 싶은 욕망을 가진 귀여운 여자다. 허나 내가 그녀를 찾고 좋아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그녀는 마음 또한 너그러워 외로움을 타는 나를 기꺼이 위로해 주고 용기를 준다. 황량한 벌판에서 떨고 있는 나를 따습게 품어주며 거울을 보여준다.

“여기 이렇게 근사한 여자가 바로 당신이야.”

진짜 모델인 양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으라 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씩씩해지란다. 마음이 허하거나 웅크리고 있을 때면 으레 손을 내민다.

이렇게 팍팍 밀어주는 여자가 내 속에 있기에 행복하다. 나만의 패션쇼. 그녀 만나기를 앞으로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우물 안 개구리의 울음일지라도 힘겨울 때 울 줄 아는 개구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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