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비진·용초·죽도에서 만난 사람들

용초도·죽도·비진도, 거제서 갈 수 있는 뱃길 없어

왕래 적지만 생활에 만족하며 고향에 대한 자부심 강해

한산도에 다리가 놓인다면 거제면 아지랑마을에서 좌도를 거쳐 가면 가장 가까운 거리가 될 수 있다. 통영시 산양읍에서도 가능하겠지만 거제에서보다 두 배 이상 거리와 비용이 예상된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 주민들의 바람과 달리 아직 통영에서 다리를 놓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상위 행정으로서의 역할로 도선(渡船)이 한산도를 중심으로 각 섬에 다니면서 정체성의 끈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많지도 않은 배편이지만 이를 의존하는 섬사람들은 뭍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섬사람들과 연락하는 유일한 수단인 도선은 한산도의 경우 거제 둔덕면 어구마을에서 차도선이 다니기 때문에 그나마 거제와의 끈도 닿아 있다. 하지만 한산도 일대의 다른 섬들은 거제와 사실상 단절된 상태다. 한산면에 속하면서 이전에는 거제의 땅이었지만 통영시에 편입된 이후 통영에서 도선을 이용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섬들이 많다. 한산도 근처의 용초도와 죽도, 비진도 등이 대표적인 섬들이다.
 
순박한 이웃이 있었다
지난 2010년 7월3일 거제문인협회, 거경문학회와 경기 동두천문인협회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제시 공공청사 6층 대회의실에서 제6회 전쟁문학세미나가 열렸다. 1박2일 일정으로 열린 세미나의 둘째 날 일정은 통영 용초도의 포로수용소 흔적 답사로 진행됐다.

거제의 대표적 관광지인 포로수용소유적이 통영의 용초도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는 계기였다. 이처럼 거제와 같은 아픔을 안고 있는 용초도는 그러고 보면 이전에는 행정구역상 거제에 속했고 6.25전쟁 당시 거제가 복군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거제의 한 섬으로서 포로수용소가 설치됐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거제와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제에서 바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통영에서 하루 두 번 다니는 도선을 이용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오전에 배를 타고 용초도를 갔다가 다시 죽도에서 내려 인심 좋은 이장님을 만나 한산도까지 어선을 얻어 타고 돌아올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한 섬사람 특유의 순박함일 수도 있었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그의 친절이 유난히 와 닿는 느낌이었다. 용초도에서 만난 사람들도 대부분 예전에 거제에 속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산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먹고 살 궁리 끝에 간간이 거제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거제에서 들어와 사는 경우는 없는 듯했다. 남의 집 세간이 어떤지 알 정도로 가구 수가 적은 마을에서 '하식이부식이' 할 것도 없어 보였다.

"한산도와 거제 사이에 다리가 놓였다면 서로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통영에서는 그런 말조차 없어 서운하다."

용초도에서 만난 한 주민의 넋두리였다. 섬에서 살려는 사람들이 줄어들다 보니 노령화로 인해 어려운 점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거제에서 들어와 사는 경우는 없는 듯 했다.

그는 "통영시가 이순신 장군과 한산대첩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면서도 정작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다리를 놓지 않고 한산도를 방치하고 있다"고 서운해 했다.

한산도가 육지와 이어지면 자연스럽게 용초도 주민들도 뭍으로 나가기 쉬울 것이라는 생각인 듯했다. 용초도 주민들을 뒤로 하고 찾아간 죽도에서는 아주 친절한 정지홍(64) 이장을 만날 수 있었다. 정 이장은 "발전을 위해서는 거제에 포함되는 게 나을지 몰라도 교통이나 생활면은 통영이 편하다"고 말했다. 생활권이 모두 통영에 있다 보니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거제의 조선소에 취직한 젊은이들이 더러 있지만 거제와는 큰 통교가 없는 섬이 죽도라고 설명했다.

간혹 통영시의 홀대에 대한 불만으로 "잘사는 거제로 행정구역을 바꾸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그때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정 이장의 어선을 타고 한산도에 내려 통영으로 올 수 있었다. 한산도에 갈 일도 없으면서 한사코 볼일이 있다고 우기며 일행을 태워주는 불편을 감수했다. 순박한 이웃의 모습 그대로였다.
 
한산도에서 비껴 있어 '비진도'

태풍 '도라지'의 영향으로 배가 뜰 수 있을지 염려했지만 다행히 '비진도'로 가는 도선을 탈 수 있었다. 해수욕장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비진도는 말로만 들었을 뿐 실제 가보기는 처음이라 흥분도 됐다. 섬에 내려 처음으로 만난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귀찮은지 "이 집이 이장집인께 개서(거기서) 물어 보라모"하며 이장을 소개했다.

KBS 2TV 1박2일 프로그램 촬영 당시 그 많은 출연자들과 스태프들의 식사를 도맡아 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는 거제의 '외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저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물가가 너무 비싸서 엄두가 안나더라"고 말했다.

비진도에서는 거제와 관련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외지에서 펜션사업을 위해 사람들이 들어오는 경우는 있지만 거제 사람들은 아니라고 했다. 대구지역 사람들이 많이 오는 편이라고 했다. 전체 50여 가구 중 10여 가구가 펜션이나 민박업을 하기 위해 비진도에 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섬의 전형인 반농반어의 비진도는 물산이 풍족한 편이고 특히 여름에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수입이 짭짤하다고 했다. 해수욕장 관리권을 갖고 있는 어촌계가 해마다 2~300만원씩 이윤을 나눠준다고 했다. 벌이가 없는 노인들에게는 더 없이 살기 편한 곳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상 교통불편으로 인한 문제가 많다고 푸념했다.

"노인들이 아파 병원을 다녀야 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노인들은 언제 아플지 모를 일인데 진료소(보건소)만으로는 대체가 쉽지 않다."

교통이 불편한 점을 빼면 비진도 주민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통영에 속해 있다는 자부심도 강하게 느껴졌다.

이 장은 "지금은 100살이 넘은 분인데 예전 정정하실 때 물어본 적이 있는데 '비진'의 의미가 제승당에서 이쪽 방향으로 비껴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며 섬의 유래를 설명했다.

1박2일 촬영으로 올해 관광객이 60% 이상 늘었다는 자랑과 함께 봄에는 각종 산나물, 가을에는 시금치, 깨, 콩 등 농사가 잘되고 사시사철 맛있는 생선을 포식할 수 있는 비진도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다.

어느 마을에서나 있을 법한 불편 몇몇을 제외하면 고향이 좋다고 말하는 여느 지역의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삶,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이었다. 비진도 안에서 내심 기대했던 '거제'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존재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소시민을 만날 수 있었다. 한산도에서 조금 비껴 있었지만 그들의 삶은 '아름다움'의 정 중앙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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