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귀식 칼럼위원

▲ 민귀식 새장승포교회 목사
얼마 전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한 한 인사의 잘못된 언행으로 인하여 현직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고위공직자들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품격까지 땅에 떨어트리는 부끄러운 사건이 세계의 미목이 집중되는 미국의 도심에서 없잖아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그릇된 행동이 빗은 결과였습니다.

저는 이 같은 뉴스를 접하면서 오늘날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교회의 그릇된 모습, 한 성도의 아름답지 못한 행동이 온 교회와 성도들의 품격을 떨어트리게 하는 것은 물론이요, 영광과 존귀를 받으셔야만 하는 우리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불행한 현실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영접하면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전체 국민의 18%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들 기독교인들이 각계각층에 골고루 분산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 주로 상류층에, 또한 리더 그룹으로 갈수록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분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품격 있는 언행심사(言行心事)야말로 이 사회 속에 정말 중요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방인의 대사도인 전도자 바울은 그의 제자이면서 믿음의 아들인 목회자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딤전4:11-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품격 있는 삶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뭇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세상 속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방만한 태도나 저질적인 대화를 비롯하여 바르지 못한 몸가짐을 철저히 금해야만 합니다.

인간관계와 리더십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실적이 있는 한 교수는 주장하기를 “바르지 못한 몸가짐으로 앉아 있는 사람, 즉 기대거나 다리를 꼬고 흔들거리거나, 다리를 떨거나, 상대방에게 주목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은 절대로 인생을 결정할 중요한 일에 파트너로 삼지 말라”고 충고한 바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태도, 그윽한 음성, 진지한 경청, 품위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진실한 대화, 반듯한 자세 등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는 매우 중요한 항목들입니다.

요즘 각종 매체들 속에서 유행하고 있는 비속어나 알아듣기가 매우 힘든 언어들과 자극적이면서 수치심을 유발하고 있는 단어는 가급적 멀리하는 게 좋습니다. 즉 신사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사도의 근거는 중세 시대의 ‘기사도’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중세시대의 기사란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특권이 허용된 젊은 남자를 지칭하던 말로서 로마 제국이 그 기력을 잃고 쇠퇴해 가던 무렵인 5세기경 북유럽 국가 속에서 기사도가 탄생되었습니다.

중세 시대의 기사들은 명예롭지 못한 기습공격이나 약자나 패자에 대한 학대와 살해를 금한바 있습니다. 기사도란 영웅이 갖춰야 할 이상적인 품성으로서 무용, 성실, 명예, 예의, 경건, 겸양, 약자 보호라는 덕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윗사람에게는 용기ㆍ정의ㆍ겸손ㆍ충성으로, 동료들에게는 예의로, 약자에게는 연민으로 대하고 하나님의 교회공동체 속에서는 헌신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후 기사 제도가 중세와 더불어 몰락하자 기사도를 대신해 존경할 만한 행동 규범으로 신사도가 나타난바 있습니다.

명예의 존중, 관용, 봉사, 함부로 남과 싸우지 않는 것,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될 경우에도 일정한 룰을 지키는 것(소위 페어플레이 정신), 부상당한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는 것, 여성에 대한 정중한 태도, 노인ㆍ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위로 등이 신사도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스스로 갖춤으로써 신사도의 품격을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와 같은 아름다운 ‘성도의 품격’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아름다운 성도의 품격을 나타냄으로 세상 속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우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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