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병원 정수기, 위생상태 불량 민원 제기… 물때와 곰팡이 등 심각한 수준
정수기 업체에만 소독 맡긴 채 무관심으로 사태 키워…보건소도 일부 책임

병을 앓는 어린아이들이 입원해 있는 모 병원들의 정수기 위생상태 문제가 불거지면서 해당 병원에 입원한 어린이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고현 소재 모 병원. 시민 A(32·고현) 씨는 아이를 병원에 입원시킨 후 병간호를 하던 중 젖병에 물을 담으러 정수기로 향했다.

평소와 달리 무릎을 구부린 채 정수기 입구에 젖병을 갖다 댔다가 심상치 않은 것이 눈에 들어와 자세히 살핀 결과 물 나오는 입구 주위에 검은 물때가 여기저기 잔뜩 끼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아연실색했다. 그는 재빨리 젖병을 빼고 간호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1개월에 한 번씩 정수기 회사에서 꾸준히 검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다보니 이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대응했다는 것.

A 씨는 "청소를 한 정수기가 그렇게 지저분할 수는 없다"며 "웬만한 상태면 참았겠지만 발견 당시 상태는 물을 지속적으로 먹어온 내가 차마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대부분 세균에 예민한 병을 앓고 있는 아기들이 먹는 물인데 물이 나오는 입구 주위가 세균에 노출돼 있어 병을 나으려고 왔다가 오히려 병을 키우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해당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같은 업종의 또 다른 병원도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입원실이 있는 두 개 층의 정수기 모두 A 씨가 발견했던 것처럼 물때와 곰팡이로 얼룩져 있었던 것.

그런데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모들은 아무렇지 않게 부근에 컵을 대고 물을 받아 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이 문제가 지금껏 논란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문제의 부위가 정수기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평균 키의 어른들이 일반적인 자세로 물을 받을 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무릎을 꿇거나 굽혀여만 보이는 곳으로 정수기가 지저분할 것이라 생각지 못한 부모들은 미처 발견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에 대해 병원 관계자는 "정수기 회사에서 매번 점검을 올 때 점검표를 작성하는데 그 곳에서는 꾸준한 점검이 이루어 졌다고 체크돼 있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만 밝혔다.

이 같은 일이 발생한 데는 병의원의 전체적인 위생상태를 확인하는 보건소의 점검체계도 한 몫 하고 있다.

보건소에서는 매년 4회에 걸쳐 병의원을 상대로 정기검사를 실시하는데 이때 점검하는 것은 의약품 관리 상태와 마약류 관리, 수술실 도구 및 시설 위생상태, 병원식당의 위생상태, 시설변경 준수, 무자격증 의료행위와 비보험부분 공개적 명시에 대한 것뿐이었다. 정수기처럼 생활에 밀접한 시설물에 대한 점검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해당 병원의 관계자도 "여지껏 점검이 있어도 일부러 정수기 점검을 한 적은 없었다"며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했다.

또 매해 '1기관 1회' 이루어지는 정기검사와 적발 시 시정명령에서 그치는 '솜방망이 처벌' 또한 이 문제를 키우는 불씨가 됐다.

보건소 관계자는 "많은 병의원을 점검하다보니 해당 회사에서 관리하는 정수기 같은 것은 미처 신경쓰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변명했다. 처벌에 관해서는 "잘못된 점이 발견되도 명백한 실행과 결과가 없는 이상 강력한 처벌을 할 명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민원으로 긴급 점검을 시행해 이를 어긴 병의원들에게 시정을 요청할 것이며 민원이 들어온 곳과 의심기관을 집중적으로 수시점검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원이 발생했던 병원 관계자도 "이 일이 있은 후 민원인에게 사과의 말을 전함과 동시에 정수기 회사를 변경하고, 정수기도 새 것으로 모두 교체했다"며 "앞으로는 정수기 회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간호사들이 수시로 점검해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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