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철봉 칼럼위원

▲ 문철봉 거제YMCA 사무총장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길을 따라 나서기로 하고 세 번을 돌아 왔다.

첫길은 승주 선암사의 우아한 아치형 옛 돌다리인 승선교를 지나 주암댐 수몰지역 고인돌을 옮겨다 놓은 고인돌공원, 갈대습지에 흑두루미가 겨울을 나고 가는 순천만을 따라 걸었고 두 번째 길은 하동과 광양 섬진강포구의 벚꽃 길에서 시작해 섬진강을 따라 올라가 지리산  의신계곡의 옛길(서산대사길)을 걸었다. 그리고 노고단을 넘어와 지리산둘레길 3코스에 있는 '카페 히말라야'에서 끝내기 쉼을 하고 왔다.

세 번째는 산청 차황면으로 올라 철쭉이 져가는 황매산 길을 따라 걸었다. 이렇게 몇 사람이 동아리가 되어 길 한 바퀴 돌아오는 이것을 우리는 '길 따라'라 부르기로 했다.

함께 정한 코스를 길잡이가 앞서고 무리가 따라가며 자연스레 화두를 던진다.

"봄의 시어(詩語)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하면 '새싹' '초록' '처녀 총각' '종달새' '진달래' 하다가 김소월의 시(詩) '진달래'를 암송하고 뒤이어 '얄리 얄리 얄라셩~ 가시리 가시리잇고~' 노래가 따라 붙는다.

길을 따라 가는 걸음은 자연히 느리고 한가롭다. 보이는 것들이 많아서도 그렇지만 오감으로 다 느끼며 가는 길이기에 자연히 그러하다.

풀과 나무가 구름과 바람에 몸짓하고 돌과 바위 물과 흙이 각각의 모양과 냄새를 준다. 길에서 만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같이 같은 듯 싶다가 다가가 자세히 볼라치면 또 제각각이다.

더러는 무심히 지나던 것들도 어느 순간엔 시선을 끌어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결같이 듣던 물소리 새소리가 발걸음을 붙드는 마음을 울리는 소리가 되고 나비의 날갯짓과 풍뎅이의 몸짓이 의미 있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

무섭던 벌조차도 꽃 사이 오고가는 부지런함을 들여다보게 되면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렇듯 길을 따라 가다보면 늘 낯설다가 곧 친숙해지고 늘 눈에 익은 듯이 하다가 새롭게 만난다.

이렇게 우리는 길에서 보고 느끼고 대화하며 때로는 새로운 만남의 기쁨을, 때로는 오랜 뒤의 만남으로 해후하는 따스한 반가움의 감동을 얻는다.

이런 감동과 느낌을 통해 자연에 스스로 동화되는 것을 체득하고 익히며 길을 따라간다. 이러다 누가 "요 근처에 깔끔하고 예쁜 찻집이 있는데…" 하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하는데 으레 이렇게 찾아들어가는 산길의 찻집엔 내공 있는 주인장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주인장은 길손을 반길 줄 알고 대접 또한 후하기 마련이라 대개는 차 맛의 이것저것과 다도(茶道)의 가르침을 덤으로 얻는다. 길 가는 중에 끼니때가 되면 누구라 할 것없이 각자가 좋아할 음식집을 찾아들고 혹 한식당에 다같이 들더라도 각자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주문한다.

이럴 때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하나로 통일"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길 따라'에는 개인의 의사와 개성을 존중하는 것에 생각과 마음을 두고 실천하고자 한다. 마치 길의 갈래가 무수히 많고 각각이 달라도 길은 길로서 통하는 것처럼 우리도 길에서 배우는 대로 실천하려는 것이다.

어느 길이던 '길 따라' 감에 있어서 길이 가지는 가치와 철학이 있음을 안다.

길이 지닌 모든 것에 수용되고 그 놓인 방향과 높낮이에 순응해서 가야하는, 시작이 끝이며 끝이 시작일 수 있는 길, 누구에겐 힘든 길일 수 있고 누구에겐 아름다울 수 있는 길, 더러는 함께 가면 좋을 수 있고 혼자서도 깊은 사색으로 도(道)에 이를 수 있는 길, 삶이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야 하는 길, 직설과 은연의 가르침과 깨우침이 있는 길이다.

분명 이러하기에 자연스레 '길 따라' 나서서 가다 보면 내 깊음이 아니라도 길이 지닌 가치에 얹혀서라도 갈 것이기에 길을 간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몇몇의 무리로 간다. 다행히 몇 번의 길나서기를 하고 보니 우리 무리에서 이를 벗어나려는 사람은 없다. 혼자서 다리쉼을 한다거나 무엇에 도취해서 무리에서 멀어졌다 합류하는 사람은 있으나 저만이 뛰거나 휑하니 앞서 내달려 가는 사람은 없다.

아직은 놓인 길에서 함께 걸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길에서 주어진 모든 것을 오롯이 느끼고자 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의 '길 따라'가 음속을 넘어 빛의 속도로 내달리는 세태를 반역하는, 우리로써 가장 잘 살아가는 방법으로 택하는 몸짓인, 땅위의 길가기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까닭에 무수히 많은 다른 길들을 두고 오솔길, 산길, 들길, 꽃길 같은 땅 길만 따라 나섬이 더더욱 좋아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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