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2년7개월간 25억 투입해 복원공사 끝내고 준공식 개최
1974년 윤병재 전교 발의로 중건 이후 14동채 40여년 만에 복원
1704년 우암 송시열을 배향해 창건 이래 현재는 6인의 선현 모셔

거제 유교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반곡서원(盤谷書院)이 우여곡절 끝에 창건 당시와 가장 비슷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1974년 거제향교 윤병재 전교가 중건을 발의한지 40여 년만. 두 번의 안타까운 고비와 여러 가지 뜻하지 않는 사정으로 인해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했던 그 아쉬움을 이제야 한 보따리 풀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반곡서원에 다다르면 서원의 정문격인 외삼문이 안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서원의 문들은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 전통이자 법칙.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두 채의 건물은 원생들이 숙식과 독서를 하던 건물로 강당에서 바라본 동서방향으로 이름이 나뉘어 동재와 서재로 불린다.

그 사이를 따라 한 계단을 오르면 서원 내 중심에 자리한 강당이 보인다. '반곡서당'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대청마루와 좌우 온돌방으로 구성돼 서원의 행사와 유림의 화합, 학문 이야기를 나누는 곳으로 사용돼 왔으며 원생들이 강회가 있을 때만 강당에 오를 수 있고 평상시에는 교수진들의 전용건물로 이용된다.

그 옆에 위치한 죽천은 '대나무 숲의 샘물'이라고 해서 만들어졌다. 대나무 색을 머금어 녹색빛이 감도는 이 샘물은 1689년 문청공 김진규 대제학이 5년간 수양해 만들어진 곳. 이전에 먼저 유배를 왔던 우암 송시열 선생과 충헌공 김창집, 좌이정 이이명, 신구 선생 등도 이 샘물을 마신 것으로 전해지지만 문청공 김진규 대제학이 이용하면서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죽천을 마주하고 있는 큰 비석은 '반곡서원유허비'다. 선현들을 추모하며 자취가 있는 곳을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 1879년 진주목사 동양 신석유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비각은 그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

협문을 지나 조금 동떨어진 집 한 채를 볼 수 있다. 그 집채는 옛날 서원을 관리하는 노비들이 기거하며 제수를 준비했던 주거지인 고직사다. 살림집인만큼 마루 방 부엌 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어 복구된 현재는 서원의 관리인이 거주하고 있다.

강당을 거쳐 내삼문을 지나면 서원의 대표적 건물이자 가장 경건한 장소인 우암사와 동록당이 나타난다. 우암사는 서원의 가장 많은 선생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중건 당시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곳이었다. 그곳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신위를 주벽으로 모시고, 김진규·김창집·민진원·이중협·김수근 등 6인의 선생을 모시고 있다. 나란히 위치한 동록당 또한 거제 출신 동록 정혼성을 모시는 사당이다. 매년 3월 정일이 되면 우암사와 함께 제를 지내고 있다.
 
반곡서원의 발자취

1704년(숙종30년) 거제 유림이었던 윤도원·옥삼헌·김일채·윤명한·허유일·신수오는 우암 송시열 선생을 배향코자 거제면 동상리에 서원을 창건했다. 당시 이름은 '거제서원'. 1690년대부터 '거제우암서원'이라 불리던 이름을 변경하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후 죽천 김진규, 몽와 김창집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1863년(철종14년)에는 단암 민진원, 삼호 이중협, 계산 김수근 선생을 추가로 배향해 위패를 봉안하면서 이름도 '거제반곡서원'을 거쳐 지금의 '반곡서원'으로 확정됐다.

서원 창건 후 매년 음력 삼월 상정일이면 향례를 올리며 서원의 기능을 유지해오다가 1868년(고종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라는 위기를 맞게 됐다. 이로써 서원은 철폐로 막을 내리는 듯 했다.

그러나 1906년 서원철폐를 비통해 한 뜻있는 거제 유림들이 서원의 옛터에 제단과 '반곡서원유허비'를 세우고 매년 가을철마다 단제를 봉행해 왔다. 그렇게 70여 년을 관리부재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버텨오던 서원은 1974년 거제향교 윤병재 전교가 반곡서원의 복원을 유림총회에 발의함으로써 복구작업에 싹이 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암사를 중건하고 고택 3채를 철거해 생긴 자리에 강당과 동록당이 새로 건립돼 변화를 맞이했지만 한 가지 가장 큰 아쉬움을 남겼다. 새로 보수된 건물은 서원으로서의 기능과 형식에 전혀 맞지 않았고 예산부족으로 인해 건축자료 일부가 콘크리트 기둥과 시멘트 기와로 사용돼 옛 모습으로 복원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거제의 유일한 서원이자 전통이 있는 문화재인 반곡서원은 또 40년의 세월이 흘러 그 가치를 발휘하고 선현의 정신문화유산을 계승하고자 하는 바람이 계속돼 더 이상 복원이 불가피 해지자 2010년 서원의 성격과 특징, 규모에 맞게 최대한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됐다.
 
제자리 찾은 거제의 서원

거제 유림들이 '서원으로서의 위치를 잃어간다'는 이유로 반곡서원 복원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중건 당시 제대로 복구되지 못해 사이 문들이 부서지고 건물 외벽은 볼품없이 변색됐기 때문이었다. 거제 유교의 중심인물인 선생들을 모신 곳이었기에 그들은 끊임없이 복구를 요구했다.

그 후 2010년 복원·정비로 역사관광자원을 구축함으로써 거제시를 경남 역사관광 중심지역으로 증진시키고자 1974년 의미 없이 중건됐던 건물들을 철거하고 옛 방식 그대로 다시 창건하는데 주력했다.

이번 복원에서는 4가지 조건을 충족했다. 우선 반곡서원의 옛 기능을 회복해 역사교육의 훌륭한 자료적 가치를 확보하고자 했던 교육성이다. 또한 현대인들에게도 선현의 전통적인 교감을 느끼게 했던 역사성을 중점에 뒀다.

그리고 반곡서원 이외에 거제면에 있는 다른 문화재인 거제기성관, 거제칠정, 거제향교 등과 같은 관광시설을 연계할 수 있는 이용성을 높였다. 마지막으로 낙후된 거제면 동상리 일대를 정비하는데 이바지함으로써 앞으로 거제면을 넘어 거제시가 관광명소로 발전할 수 있는 장래성을 갖추도록 했다. 

2년 7개월간 사업비 25억을 투자해 복원된 반곡서원의 재탄생을 축하하고자 지난 21일에는 복원 준공식이 열렸다. 1부 준공식에는 200여명의 사림들과 한기범 충청학연구소장, 권민호 시장, 황종명 의장 등이 참석해 축하의 인사를 남겼으며 이후 이어진 2부 학술대회에서는  '반곡서원 복원의 의미와 우암 송시열'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마친 한남대학교 교수이자 충청학연구소장인 한기범 교수를 시작으로 3시간동안 4명의 발표자들의 발표가 진행됐다.

의도치 않게 숨어 부활을 꿈꾸던 반곡서원. 서원의 재건을 축하하는 모든 사람들의 뜻에 힘입어 거제면을 넘어 거제시의 문화유산으로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아직 많다. 하지만 이번 재건을 발판으로 삼아 새롭게 도약하는 서원이 선현들의 학덕과 뜻을 전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현대인들이 방문해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는 데 일조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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