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윤일광(수월초) 교장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디까지를 봄이라고 생각했을까? 우리나라 24절기의 시작점인 입춘(立春)을 기준으로 하여 그 여섯 번째인 곡우를 봄의 끝자락으로 보았다. 그리고 보름 후 입하(立夏)로부터 여름이 문턱을 넘게 된다.

'비 우(雨)'자가 들어 있는 절기로는 우수(雨水)와 곡우(穀雨)인데, 그 때가 일 년 중 농사에 있어 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했으니 우수 때 내리는 비는 얼었던 땅을 녹이고, 곡우에는 일 년 농사의 첫 시작인 못자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비는 농부들에게 생명줄과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곡우란 '곡식에 꼭 필요한 비'라는 뜻으로 '곡우 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땅이 석자나 마른다'는 옛말이 비의 절실함을 말해주고 있다.

모를 내기 위해서는 지난해 준비해 두었던 볍씨를 물에 담가 싹을 틔우는 일이 제일 먼저다. 농부들은 이때 공을 제일 많이 들인다. 볍씨가 싹 트는 모습을 보면 부정 탄다고 덮어 둔 담요를 들치는 일은 금물이었다.

이때만은 나라에서는 죄인을 잡아들이지 않았고, 농부는 상가(喪家)에 가는 것을 꺼렸고, 부부간에 몸을 섞는 일도 피했다. 토신(土神)은 질투가 심해서 부부가 잠자리를 같이 하면 벼를 쭉정이로 만들어 버린다는 속신(俗信)때문이었다. 그만큼 모를 가꾸는 일은 마치 경건한 종교와도 같았다. 곡우 무렵에는 나무에 물이 많이 오르는 시기라 박달나무나 자작나무에 상처를 내고 받은 수액을 '곡우물'이라 했다. 경첩 때 받은 고로쇠물은 음기가 많은 여자물이라 남자에게 좋고, 곡우물은 양기가 많은 남자물이라 여자에게 더 좋다고 알려져 있다.

곡우 때 잡은 조기를 '곡우살이'라 해서 최고의 맛으로 치고, 차(茶)도 곡우 전후에 딴 첫물차를 우전차(雨前茶) 또는 세작(細雀)이라고 해서 최상품으로 친다. 다행이 이번 곡우(20일·토)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으니 올해는 풍년을 예약한 거나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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