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 윤일광(수월초) 교장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옷을 벗는다.

미국 문학사에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작가이며 자유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트 휘트먼(1819~1892)은 시골집에서 옷을 입지 않고 살았다. "이렇게 자연과 가까이 있었던 적이 없다.… 상쾌하고 머리가 맑고 고요한 자연 속의 나체!"라고 시에서 표현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미술작품을 보면 벌거벗은 남자나 여자의 모습이 많이 나온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벌거벗은 자신의 육체를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외심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 나서 "유레카"라고 외치면서 벗은 몸 그대로 궁전으로 달려갔다는 일화는 그 당시로는 벗은 몸이 창피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도 묘사되고 있는 세계적인 신흥종교 위카(Wicca)에서는 알몸 입회식을 거행한다. 신도들은 옷을 벗고 하늘을 입는다고 생각한다. 힌두교 성자들은 '무소유'를 통해 해탈이라는 궁극적인 자유를 얻기 위해 나체로 생활하는 사람이 많다.

독일 속담에 '여자가 치마를 높이 올릴수록 아마가 높이 자란다'고 한다. 아마(亞麻)는 삼베 따위의 원료가 되는 마(麻)의 종류다. 아마 밭에서 여자가 벌거벗는 것은 땅의 생산성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풍습은 있었다. 함경도 지방에서는 정월보름날 밤에 아직 장가가지 않은 남자 가운데 물건이 큰 수총각을 골라 밭을 갈게 하는 '나경(裸耕)'에 대한 기록이 있다. 경주지방의 풍습에 기우제의 한 행사로 여자 무당이 속곳을 입지 않은 채 치마를 벌렁벌렁 들추고 다리를 번쩍번쩍 들면서 춤을 추었다. 가뭄은 음력에 비해 양력이 너무 강한 데서 빚어진 것이기 때문에 주술로서 음력을 보강한다는 뜻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레오폴로 미술관에서는 남자 누드 초상화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관람객은 알몸이어야만 입장을 할 수 있었다. 당초 1월 말까지 전시계획이었으나 호응이 좋아 3월 초순까지 연장되기까지 했는데 누드화를 보는 누드관람객이 더 인기였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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