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濟閑山加助漁基組合

1910년 한일합방 이전부터 일본 어민들이 조선 어업권을 침탈하기 시작한다.   

1889년 10월 한일통어장정(韓日通漁章程) 조인한다. 이 조인의 근본은 일본 어민들은 조선의 해안에서 조업을 할 수 있게 하고, 조선의 어민들은 일본의 해역에서 어업을 할수 있게 하자는 통어(通漁) 조약인데, 그 당시 조선 어업은 일본 해역까지 갈 수 없는 낙후된 어업이었다. 당파싸움으로 일삼고 있던 조선의 정치인이 일본인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다.

대한제국 말엽 한국인에 의해 조직된 수산단체로서는 융희(隆熙)2년인 1908년 7월10일 거제한산가조어기조합(巨濟閑山加助漁基組合)이 거제시 사등면 가조도에 있었다. 민간 어업 조합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조합이다.

한일합방전에 일본식 표현인 조합(組合)으로 수산단체가 설립됐다. 설립경위에 대한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한국수산지(韓國水産誌) 등에는 수산법령에 의거해 1908년 7월10일 농상공주대신의 인가를 받아 거제한산가조어기조합(巨濟閑山加助漁基組合)이 탄생됐다고 한다.

이 조합이 사등면 가조도에 설치됐다는 것은 그 당시 가조도가 어업의 중심권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통영·고성·남해·삼천포 등 어업을 주업으로 하는 지역이 있는데도 작은 섬 가조도에 어기조합이 설치된 것은 가조도 주변에 왕실에서 경영하던 궁방어장(宮房漁場)이 72개소 있었고 피조개를 비롯한 패류(貝類)가 많이 서식하기 때문에 조선조 말기부터는 이곳이 남해안에서는 가장 좋은 어장터였다.

그런 조건으로 조합이 가조도에 설치됐다고 한다. 그 장소가 가조도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다. 현대한국수산사(現代韓國水産史)에는 수산관계법령에 의거해 설치된 단체가 아니고 임의(任意)로 설립된 최초의 민간단체 수산조합이라고 한다. 아무튼 조합(組合)이란 명칭으로 최초로 설립된 거제한산가조어기조합은 한국수산사에서 역사적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조합을 일본인 키치무라(吉村敬市)가 조합이름을 거제(巨濟)와 한산·가조(加助) 지역으로 사용한 것은 그 당시 거제만 일대와  가조도가 어업이 가장 잘됐던 지역이다. 그래서 어느 한 곳만의 이름을 사용하면 지역 사람들의 반발과 거제, 가조도의 어로구역을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2개 지역의 이름을 같이 썼다고 한다. 

조합을 구성한 것은 통영 한산도에서는 해조류인 청각이 많이 났고, 가조도에서는 대구가 많이 잡혔다.

그래서 두 곳의 섬에서 생산되는 해조류와 대구를 조합을 통해서 정당한 값을 받고 팔아 필요한 자금도 융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광무(光武 4년·1900) 5월16일 칙령(勅令) 제9호로 진남군(鎭南郡)이 설치되면서 한산면(閑山面)이 신설됐고, 사등면 가좌도(加佐島)는 진남군의 동면東面)에 편입됐다. 융희(隆熙 3년·1909) 3월13일 칙령 제8호로 진남군을 용남군龍南郡)으로 개칭하고 가조도를 가조면(加助面)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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