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 윤성원 거제불교 거사림 2기 학생회장
우리는 어려움 속에 있을 때 사회에 욕구와 욕심의 손을 내밀게 된다. 배고픈 마음에 밥이란 이름으로 부처님의 공의 세계를 알게 되고. 밥 생각이 머리에 들어온다. 차가운 바람 퇴근길, 우리는 더디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어둡고 긴 거리 속에서 희고 둥근 한 그릇의 밥을 생각한다.

텅 비어 쭈글쭈글해진 욕심으로 위장을 탱탱하게 펴줄 밥. 잘났다고 자랑하는 사람에게는 '잘난 밥'이,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밥'이 지금 앞에 다가오고 있다. 춥고 음침한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밥, 잡 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버리고 깨끗해진 머릿속에 단정하게 가득 들어오는 밥 생각, 마음 가득 밥 생각.

그 밥 생각에 한 그릇 밥처럼 환해지고 둥글어지는 얼굴, 바로 행복한 마음 뿐일 것이다. 그러나 음침한 뱃속에 배고픔이 오면 환해졌던 얼굴이 다시 일그러지고, 그 일그러진 얼굴이 다시 사회를 힘들게 하는 것을 우리는 막아야 할 것이다.

배고픔에서 식욕을 해결되면 간사한 생각이 잘못된 행동으로 가지 못하게 부처님은 한량없는 마음(사무중심·四無重心)을 가지라고 하신다. 그 한량없는 마음이 움직이는 존재가 행복과 행복의 씨앗을 갖게하는 마음인 헤아릴 수 없는 자비(慈)다.

자비는 움직이는 존재가 고통과 고통의 원인에서 벗어나기 도와주는 헤아릴 수 없는 연민이고.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고 늘 행복에 머무를 수 있게 해주는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이다.

또한 움직이는 존재가 타인에 대한 집착과 혐오에서 벗어나 우리는 모두 동등하다는 믿음을 키워나가기를 도와주는 헤아릴 수 없는 평정심이다.  배고픔에 대한 생각으로 초심을 잊지 말고 좋은 생각을 간직하면서 변해가는 계절을 우리는 평정심을 바라볼 것이다.

나뭇잎은 단풍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새싹으로 변해 다시 단풍으로 돌아온다. 배고픔의 진리, 단풍의 진리를 배우기를 실천할 것이다.

인(仁)을 좋아하기만 하고 배우기를 게을리 한다면 그 폐단은 어리석음으로 흐르게 될 것이고, 지혜를 좋아하기만 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방탕한 데로 흐르게 될 것이다.

신의(信義)를 좋아하기만 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자신을 해치는 데로 흐르게 될 것이다. 용감하다고 자신의 것만 좋아하고 남의 배고픔과 시간이 변해가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그 폐단이 사회를 힘들게 할 것이다.

힘만 좋아하고 힘 없는 사람의 마음을 배우지 못하면 그 폐단이 경거망동 하는 데로 흐르게 될 것이다. 배우는 시간은 따로 없을 것이고 배고픔도 따로 없을 것이다. 사회는 배고픔 속에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고, 배움의 시간도 지금 이 시간에 책으로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옳지 않은 점이 있으면 성의를 다해서 충고를 해야 하며, 충고를 할 때는 아주 부드러운 말로 부처님처럼 잘 인도해야 한다. 정성어린 충고가 받아들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적당한 선에서 그만둬 모욕을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 배움과 배고픔은 자신이 알 것이고 사회나 주위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충고를 받지 못한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배움의 시간을 꼭 알게 될 것이다. 욕구는 크지만 행동은 없는 사람은 목적이 없을 것이다.

욕구는 욕심일 것이고 배고픔은 인내를 시험하며, 그 인내심에 우리는 다른 길을 걸어가는 색깔일 뿐이다. 다른 길에서 다시 배고픈 마음, 초심으로 이제 같이 갈 뿐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