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윤성원 거제불교 거사림 교양대학 2기 학생회장
'작은 발을 쥐고 발톱을 깎아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태어남. 첫 울음소리를 기억하라. 이웃집에서도, 사회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우리는 서로가 달리며 잘난 사람이라고 고함치고 있지만 다들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다.'

초발심이 우리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지혜일 것이다. 초심은 부처님의 지혜의 힘을 생각하며 바른 도리와 그렇지 않은 도리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갖가지 선악의 업과 과보를 아는 능력, 선정의 단계와 특징을 아는 능력, 중생의 온갖 소망을 실현하는 방편, 갖가지 업을 지은 중생이 가는 곳을 아는 초심의 마음을 뜻한다.

현재의 불만을 표현하지 않고 전생의 일을 생각해 내는 모든 능력과 번뇌가 끊어진 상태와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의 능력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린아이가 우물 안으로 떨어지려는 것을 보았다. 깜짝 놀라 동정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놀란 마음을 실천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이 모든 것으로 선과 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음은 천상에서 나오는 것이지 어린아이를 구해준 인연으로 그 아이와 맺음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회와 아픔에서 남을 동정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수치를 느끼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는 마음이 없다면 또한 사람이 아니다.

동정의 마음은 '인(仁)'의 단서이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마음은 '지(知)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네 가지 종류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마치 사람에게 손과 발의 사지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사람은 사회를 보는 유익한 마음 세 부류와 반대로 생각하는 세 부류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항상 정직하고 보고 있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유익한 마음을 지닌 사람의 첫 번째요, 성실하고 하나를 위해 하는 것에도 두 가지 이상을 표현할 줄 하는 사람이 두 번째, 보고 들은 지식을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도록 행동하는 사람이 마지막 세 번째다.

사회에 손해되는 세 부류는 형식을 차리는데 능숙한 사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는 행동이 다르게 움직이는 사람, 사회에 아첨을 잘하고 말로만 행동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사회를 위해 초심을 바탕으로 지혜와 방편에서 여섯가지 생각의 사람을 구분해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사회는 내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다. 부처님 법에는 '공(空)'이란 큰 뜻이 있다. 시작도 끝도,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시작의 힘은 누구에게나 보인다. 그러나 그 마무리됨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초심에서 시작한 힘을 온전히 확인해 마음 끝에 있는 곳까지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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