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나라에 난을 당해 피난길에 오르셨다가 동해바닷가에 이르러 날이 저물어 민가에서 하룻밤 주무시게 됐다.

가난한 어부는 밥 한 그릇과 생선을 올린 조촐한 저녁상을 차렸다.

임금은 시장하던 터라 꿀맛 같은 식사를 끝내고 "내가 먹어본 생선 중에 이렇게 맛있는 것은 처음 봤다. 이 고기 이름이 무엇인고?"하고 어부에게 물었다. "묵이라 하옵니다"고 답변하니 "맛에 비해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 이제부터 은어라 하라"고 명하셨다.

난이 평정되고 궁으로 돌아와서도 은어 맛을 못 잊어 대령시켰는데 배부른 임금의 입맛에는 그 때의 은어 맛이 아니었다. "이 생선을 도로 묵으로 물리라"고 해서 '도루묵'이 된 슬픈 역사를 지닌 고기다.

먹어보지도 않고 형편없이 맛없는 생선으로 전락했고, 심지어는 어떤 일이 잘 돼 가다가도 일순 허사가 돼버렸을 때 '말짱 도루묵'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으니 도루묵 입장에서는 이름의 유래가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 임금을 고려왕이라고도 하고, 이괄의 난 때 인조임금 또는 임진왜란 때 선조임금이라는 등 여러 가지다. 이름도 '묵' '도루묵' '목어(木魚)' '환목어(還木魚)' '맥어(麥魚)' '환맥어(還麥魚)' 등 스토리는 같은데 이름이 다양하다.

평상시에는 수심 100~400m의 바다 속에 살다가 산란기인 초겨울이 되면 물이 얕은 근해로 모여들기 때문에 대표적인 겨울 생선으로 분류된다.

강원도 양양에서는 12월 초에 '물치항 도루묵축제'를 벌린다.

이 시기가 되면 통통하게 살이 올라 구워 먹거나 찌개를 끓여도 비리지 않고 특히 알이 입안에서 오도독 터지며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주로 겨울에만 맛 볼 수 있는 도루묵이 올 여름 폭염 속에서 예년에 비해 10배 이상 잡히고 있다고 한다.

30년 어부생활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어부들은 좋아하지만, 바다의 생물 분포도가 바뀔 정도로 지구의 이상이 감지되는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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