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한여름 땡볕을 받고 화단에 봉숭아가 피었다. 전에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봉숭아만큼 많은 이름을 가진 식물도 드물다.

조선시대 책에서는 '봉선화(鳳仙花)'로 적혀 있지만 지금의 우리 표준어는 '봉숭아'다.

조선 순조 때 문인이던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 '색씨와 아이들이 봉사꽃을 백반에 이겨 손톱에 물들이다'는 표현으로 보아 민가에서는 '봉사꽃' 또는 '봉사''봉새'로 통했다.

'봉선화(鳳仙花)'는 1621년 중국의 ≪군방보(群芳譜)≫에 머리와 날개, 꼬리와 발이 우뚝하게 일어선 게 마치 봉황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이라 했고 '금봉화(金鳳花)''봉새''봉이''봉황죽'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인 홍난파 작곡 김형준 작사의 '봉선화'가 일제강점기 억압 받는 민중의 표상이 되면서 '봉선화'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금사화(禁蛇花)'라는 이름은 봉숭아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뱀이 싫어하기 때문에 울밑이나 장독대, 집 주변에 심어 뱀을 쫒는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민간에서는 뱀에 물리면 봉숭아대를 찧어 발랐다.

한방에서는 봉숭아씨를 '급성자(急性子)라 부른다. 이는 약효가 빠르기 때문이며 급성자를 넣어 매운탕을 끓이면 생선가시가 물렁물렁해지는데, 이렇게 뼈를 물렁하게 한다고 해서 '투골초(透骨草)'라는 이름도 얻었다.

단단한 각질인 손톱에 물이 들어 그 손톱이 다 자라 없어질 때까지 색이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대단한 침투력이다.

그 밖에 옛 시에서는 꽃이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닮아 '누객(淚客:三柳軒雜識)', 씨가 자연스럽게 터져 나간다고 해서 '봉상화(鳳翔花:東國李相國集)', 등불을 켠 잔을 닮아 등잔화(燈盞花), 손톱에 물들인다고 '지갑화(指甲花)'라는 이름도 봉숭아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 많은 이름만큼이나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았던 봉숭아, 그 중에서 참으로 귀해져버린 하얀 봉숭아꽃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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