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의 정체성과 만나기⑦]이 보다 더한 아픔은 없다② - 포로수용소와 거제도

친공-반공 포로간 치열한 투쟁 지속…면담 나섰던 돗드 준장 '전대미문'의 납치
정치적 타격 입은 미국 병력 집결…3시간 만에 반란 포로 제압, 160여 명 숨져

친공포로 조직 '해방동맹' 인정 요구…포로수용소 신임소장 납치 '반란'
▲ 포로심사에 항거하자 미군들이 방독면을 쓰고 진압한 후 수용소 밖으로 나오고 있다.

187공수대·탱크대대 병력 증파…무력으로 친공세력 '일망타진'

돗드 준장 납치사건은 미국에 커다란 정치적 타격을 입혔다. 미군 장성이 자기들이 관리하고 있는 포로들을 학살하고 부상을 입히고 학대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앞으로 그러한 행위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는 것은 재앙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돗드 준장 석방 이후 미8군 밴프리트 사령관은 즉시 챨스 콜슨 준장을 직위해제 시키고 헤이든 보트너 준장을 새로운 수용소장으로 임명한다. 유엔군 클라크 사령관도 즉각 거제도에 187공수대와 탱크대대 병력을 증파해 거제의 미군병력은 1만5,00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헤이든 보트너 신임 소장은 친공포로들을 분산 수용하기 위해 결국 무력을 사용한다. 물론 상부의 허락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2대의 탱크를 앞세운 미군은 북한 국기가 걸려있던 제60, 제85, 제96 수용소에 차례로 돌입해 깃대를 꺾어 버렸다.   

첫 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헤이든 보트너 수용소장은 돗드 준장이 납치됐던 제76수용소를 대상으로 작전을 감행하게 된다. 당시 제76수용소는 친공포로들의 아성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수용소장의 이동 요구에 친공포로들은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칼, 창, 낫, 가솔린 폭탄 등으로 무장한 포로들은 막사주변에 파놓은 참호에 들어가 전투에 대비했다.

마침내 1개 대대의 탱크부대와 제187공수단 병력이 수용소에 투입됐다. 최루탄을 발사하며 친공포로들을 압박한 미군은 3시간여 만에 포로들을 제압하게 된다. 미군 사망자는 1명에 불과했지만 포로들은 160여명이 숨지고 수백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후 친공포로들은 새로운 소단위 수용소에 이송돼 지문을 채취 당했고, 새로운 번호표가 붙은 포로복을 입어야 했다.

당시 제76수용소를 청소하는 과정에서 창 3,000개, 칼 4,500개, 화염병 1,000개와 곤봉, 도끼, 망치 등이 발견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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