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칼럼위원

▲천창수 송진교회 목사
모든 사람은 예배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자로 창조하셨다. 누구를 예배하고 어떻게 예배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신앙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다 예배자다. 

예배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 혹은 어떤 존재에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그 대상에 우리의 삶을 헌신하는 것이다. 영광과 예배 사이의 이런 관계는 롬 11:36에서 12:1절 같은 구절에 보면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대상에 영광을 돌린다. 영광은 무거움, 중요함, 우선순위, 또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 가장 크게 여기는 보물 등을 의미한다. 우리 종교가 무엇이든지 간에 실제적으로 우리가 영광을 돌리는 것이 결과적으로 우리의 진짜 신이다.

우리는 우리가 영광 돌리는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예배한다. 우리의 예배는 대상에 대한 희생이나 헌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의 시간이나 재능, 돈을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영광스럽게 여기는 대상에 바친다는 말이다.

예배의 반대는 우상숭배 즉 성경의 유일한 참 하나님 보다 다른 어떤 피조물을 예배하는 것이다. 로마서 1장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져서 창조주 하나님 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기는 어리석은 자들을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를 다른 것들이 차지하게 된다.

우상숭배의 위험은 우상숭배가 실제적인 구세주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에 자신의 지옥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또 천국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개념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옥에서 벗어나 자신이 바라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실제적인 구세주를 예배한다.

예를 들면 어떤 젊은 여자가 독신은 자신의 지옥이고, 잘생긴 남자와 데이트하는 것을 자신의 천국으로 여기고 있다면 이 여자에게는 잘 생긴 남자가 실제적인 구세주가 된다. 그 남자와 데이트함으로써 이 여자는 자신의 독신의 지옥에서 벗어나 자신의 천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남자를 신으로 예배하기 위해 그와 함께 잠을 자거나 그의 학대를 참아야 하는 희생을 치러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예배할 때 우리가 예배하는 그 대상을 닮아가게 된다. 우리가 음식에 헌신하면 탐식가가 되고, 술 마시는 것에 헌신하면 술주정뱅이나 알콜 중독자가 될 것이다. 무신론 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의 인생 대부분을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논증하는 데 보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 마지막 11년간은 정신병자로 보냈다. 미친 사상을 예배하게 되면 결국 미치게 된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만들어졌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인생의 모든 혼돈과 공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만 예배할 때 우리 삶에 모든 어두움이 물러가게 된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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