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배 전 거제군수

몇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A가 “죽음을 두려워하느냐”고 물었다. B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C는 조금 두렵다고 했다. D는 두렵지마는 어차피 받아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A는 다시 “시간이란 언제나 같은 것이냐”고 물었다. B는 그렇다고 했다.

C는 나이에 따라 10대는 10마일로, 20대는 20마일로…, 70대는 70마일로 달리기 때문에 속도가 다르다고 해서 웃었다. D는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A는 또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B는 기지개를 켠다고 했다.

C는 시계의 알람을 끈다고 했다. D는 그 날 할 일을 생각하고 계획을 세운다고 했다. 제법 성실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A는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언제나 죽을 수 있는 확률을 100% 안고 태어났기 때문이란다. 병으로, 사고로, 재난 등으로….

그래서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언제나 받아드려야 하는 것이기에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또 시간은 언제나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이라고 했다. 깊이 생각해보면 그럴 것 같다.

A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오늘도 나에게 새로운 하루를 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어제는 이미 죽은 것이고 오늘은 언제나 새로이 주어진 삶이라고 생각한단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될 것인가,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인가 하고 생각하면 새로운 하루가 신비롭기만 하고 설레임에 가득 찬 하루가 되기 때문에 새롭고 행복한 하루가 된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예사로이 생각하는 하루는 ‘하루만’이라도 더 살기를 바라는 말기환자에게는 애타게 갈구하는 귀하고도 소중한 하루인 것이다.

어제는 죽고 우리에게 펼쳐지는 오늘은 ‘새로운 것’이란 과학적으로도 맞는 말인 것같다.
모든 생물은 외부로부터 섭취한 물질을 자신에게 필요한 구성물질로 변화시키고, 또 체내의 물질을 분해하여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를 획득한 뒤 노폐물을 몸밖으로 배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생물은 일정한 형태를 항상 그대로 유지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 구성 성분은 끊임없이 파괴되어 죽어서 배출되어 새로운 물질로 보충되고 있는 신진대사(新陳代謝)라는 현상을 생각하면 그럴법하지 않은가.

나도 대화가 있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도 제게 새로운 하루를 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실천해봤다.

신기하지 않은가. 정말 새로 태어난 것 같고 눈에 띄는 것들이 새로운 것들로 보이고 심지어는 아내마저도 새로운 아내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신진대사처럼 우리의 육체는 끊임없이 죽고 새로 태어나기를 거듭하고 있으며 매일 새로운 시간 속에서 항상 새로운 것들과 살고 있으면서, 우리의 마음만이 변할 줄을 모르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항상 새로운 것을 대하면서도 그것이 언제나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고, 어제의 고통이나 번민(煩悶)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있는 우스꽝스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알 것만도 같다. 왜 하루는 태양이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아침이 오고, 햇빛 따사로운 낮이 되고, 핏빛처럼 아름다운 황혼이 되고, 별빛 찬란한 밤이 되었다가는 다시 새로운 아침이 오는 것인가를.

왜 일년은 만물이 소생하는 아름다운 봄이 오고, 눈부시게 햇빛 내리쬐는 정열에 넘치는 여름이 되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우수에 젖게 하는 가을이 되었다가 동화의 세계처럼 하얗게 변하는 겨울이 되었다가는 다시 봄으로 되풀이되는 대자연의 섭리(攝理)를 말이다.

내일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희망마저도 잃은 채 하루 하루를 어렵고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는 군상(群像)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의 서민들이여! 우리에게는 항상 희망찬 새로운 오늘이 주어지고, 지금 한창 새봄이 펼쳐지면서 대지는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면서 소생을 재촉하고 있지 않은가.

항상 새로운 오늘을 감사하면서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탈피를 해보지 않으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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