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강동 손권의 수하였던 정천(鄭泉)은 어찌나 술을 좋아했던지 그가 죽을 때 유언하기를 '내가 죽거든 부디 내 시체를 질그릇 만드는 가마 곁에 묻어주게. 백년 후에 백골이 삭아서 흙이 되면 누가 아는가, 그 흙을 파다가 술병을 만들지'라고 했다. 이런 고사에서 나온 말이 '사위주호(死爲酒壺)'다.

우리나라에 소주가 언제 들어왔는지 확실한 기록이 없다.

중국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원나라 때 소주를 빚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고려사(高麗史)에 공민왕 때 경상도 원수(元帥) 김진(金鎭)이 소주를 좋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원과 교역이 이루어진 고려후기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한다.

소주의 순 우리말이 없는 것도 소주의 역사가 길지 않음을 짐작케하고, 제사를 지낼 때 청주(淸酒)나 탁주(濁酒)는 사용하지만 소주를 쓰지 않는 것은 소주가 원나라로부터 전해진 탓인지도 모른다.

원이 약 100년 동안 고려를 간섭하면서 민중은 원나라 문화에 대한 심한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성종 때 사간(司諫) 조효동(趙孝同)이 소주는 매우 사치스런 것이니 왕께서 소주 제조를 금해 달라고 간언했는데, 이는 조선시대 사대부를 중심으로 가양주(家釀酒)라는 이름의 고급 소주가 많았던 것 같다.

소주 제조법은 증류식과 희석식이 있다. 전통적인 소주라 함은 증류식 소주로 누룩으로 발효하여 증류시킨 것으로 지체 높은 양반만이 마실 수 있는 술이었다.

희석식 소주는 동네 슈퍼에 가서도 쉽게 살 수 있는 대부분의 소주로, 고구마 등에서 추출한 전분 주정에 몇몇 첨가물로 향을 낸 술이다. 담백하고 깨끗한 맛에 가격도 저렴하여 국민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거의 한국에서만 팔리고 있는 소주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지난해 세계 주류시장 180개 브랜드의 판매량에서 1위와 3위를 차지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이게 자랑스러운 일인지 부끄러운 일인지 헷갈린다. 필자도 '처음처럼'을 세계 3등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사람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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