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김유정의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 중의 하나가 '들병이'다.

술병을 들고 들에 다니면서 농사짓는 남정네들에게 술을 팔면서 동시에 간혹은 섹스 파트너가 되어주는 여인으로, 주로 노총각이나 머슴들이 즐겨 찾던 이동식 술집이라고 할 수 있다.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용어로 본디말은 '들병장수'다.

근래에 공원에 쉬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박카스를 건네며 접근해서 성을 파는 '박카스 할머니'가 현대식 들병이라고 할 수 있다.

들병이는 치마를 벗어주고 나면 "오라버니, 해웃값은 언제 줄꺼야?"하고 물으면 "추수가 끝나면 쌀이나 보리로 넉넉하게 쳐 줄테니 걱정하지 마"하고 안심을 시킨다.

다른 빚은 몰라도 해웃값을 떼먹었다가는 동네 망신이기 때문에 반드시 갚아야 하는 외상값이었다.

해웃값의 어원을 '해우소(解憂所)'와 연관 짓기도 한다. 해우소는 경봉(鏡峰 1892∼1982) 스님이 변소를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였듯이, 남자의 근심을 풀어준 대가로 주는 돈으로 본다. 그러나 그보다는 옷(衣)을 벗는(解) 값(債)이라는 뜻의 '해의채(解衣債)'의 의미에서 온 말로 보는 것이 훨씬 믿을만한 해석이다.

사전에는 해웃값을 '기생이나 창녀와 상관하고 그 대가로 주는 돈'으로 풀이하고 있지만 그 밖에 화대, 화채, 꽃값, 놀음차 등도 같은 말이다. 놀음차는 반드시 섹스가 아니라도 놀이 후에 주는 모든 돈이나 물건이 이에 해당되므로 넓은 의미로 쓰인다.

여성의 몸을 꽃에 비유한다.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일컬어 '말을 알아듣는 꽃'즉, '해어화(解語花)'라 한 뒤 여성의 대명사가 된다. 따라서 해웃값을 일명 '꽃값'이라고도 하는데 한자어 '화대(花代)'는 일본식 용어다. '화채(花債)'는 들병이처럼 나중에 받는 외상 꽃값이다.

국제적 중국 스타 장쯔이가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에게 성접대를 하고 하룻밤 해웃값으로 18억원을 받았다는 보도에 장쯔이는 펄쩍 뛰고 있지만, 하룻밤 파트너에게 이런 해웃값을 줄 수 있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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