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여러 가지 색깔이 두루두루 어울리게 잘 갖추어진 상태를 이를 때 '구색(具色)이 맞다'고 말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미인도 '구색(九色)'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를테면, 손과 살결과 치아는 희야 하고(三白), 머리카락과 눈동자와 눈썹은 검어야 하고(三黑), 손톱과 볼과 입술은 붉어야(三紅)한다.

피부를 희게 하기 위해 분(粉)을 사용했다. 분은 쌀(米)과 가루(分)를 뜻하는 글자로 옛날에는 곡식이 주원료였다고 보이지만 최상의 분은 분꽃씨에서 얻은 가루였다.

분꽃의 씨앗 속살을 곱게 빻아 간 백분(白粉)을 분첩에 보관했다가 화장할 때 적당량을 분접시에 덜어내고 물로 개어 요즘 화장도구인 퍼프(puff) 대신에 누에고치로 얼굴에 곱게 펴 발라 마르면 물로 씻어내는 분세수로 피부를 희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상표 등록된 화장품 1호는 '박가분(朴家粉)'이다.

1910년에 등장하여 1920년에 정식허가를 받았고 신문을 통한 화장품 광고로도 최초다. 당시 여자에게 박가분 하나 사 주지 못하는 남자는 무능함의 대명사였으니 박가분의 인기를 알 수 있다.

재래 분의 결점인 피부 부착력을 높이기 위해 납을 식초처리하여 생긴 하얀 납꽃을 섞어 썼는데 이로 인해 오래 사용하면 납의 부작용으로 피부를 망치게 되자 여자들의 항의가 빗발쳐 박가분의 전성시대는 끝나고 만다.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편지로 가장 이른 시기로 추정되는 대전 유성구 안정 나씨(安定 羅氏) 묘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부부의 편지를 복원하여 며칠 전에 공개했는데 그 편지 속에 유난히 눈에 띄는 한 대목이 있다.

"분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라는 내용인데 남편의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엿보인다.

분은 중국 고대 상(商)과 주(周)나라 여성들이 사용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약3천년의 역사를 지녔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예뻐지려는 여자의 노력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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