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영국하면 '젠틀맨'을 떠올리게 되는데 젠틀맨은 옷을 잘 입은 사람이 아니라 '페어플레이(fair play) 정신'과 '버큰헤드(Birkenhead)정신'으로 무장된 '젠틀맨십(gentlemanship)'을 말한다.

1852년 2월 27일 새벽 2시, 군인 472명과 가족 162명을 태운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드호가 남아프리카 희망봉 앞바다를 지나다 암초에 걸려 침몰하기 시작했다.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바다에는 상어 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갑판으로 몰려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60명이 탈 수 있는 구명보트 3대가 유일한 생존도구였다.

그때 함장 알렉산더 세튼 대령이 병사들은 집합시켰다. "지금까지 가족들은 우리를 위해 희생해왔다. 이제 우리가 가족을 위해 희생할 차례다"하며 다섯 명의 악사로 하여금 국가를 연주하게 했다.

그 사이 어린이와 여자들을 구명보트에 태웠고, 병사들은 떠나가는 가족을 보면서 배와 운명을 함께 했다. 지금도 영국 사람들은 극도의 혼란을 당하면 '버큰헤드 정신으로'하고 외친다.

1912년 4월 10일 영국 화이트스타 회사가 건조한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뉴욕을 향해 처녀 출항 중 4월 14일 밤 11시경 높이 20m의 30만 톤급 빙산과 충돌하면서 배는 허리가 두 동강 나는 사고를 당했다.

4월 15일 새벽 4시 10분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여덟 명의 악사가 찬송가를 연주하는 속에 여자와 어린이를 구명보트에 태우고 남자들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승선한 2,223명 가운데 1,515명이 목숨을 잃은 대참사였다.

전설 속에만 있던 타이타닉호는 1985년 내셔널지오그래픽 해양 탐험가 밥 발라드박사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었고, 지난 15일 침몰 100주년을 맞아 타이타닉호의 잔해는 유네스코 수중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타이타닉하면 뱃머리에서 남녀 두 주인공이 팔을 벌리고 바닷바람을 맞는 영화의 한 장면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죽음의 순간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버큰헤드정신을 부러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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