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남산골에 허생(許生)이라는 선비가 살았다. 집에는 식량이 떨어져 굶을 판인데도 책만 읽었다.

이 무능한 남편에게 돈 좀 벌어 오라고 아내가 닦달질을 하자 이를 견디지 못해 장안의 갑부인 변씨(卞氏)를 찾아가 1만량을 빌려 안성으로 내려간다.

그 곳에 있는 대추, 밤, 곶감 같은 제수용 과실을 매점매석(買占賣惜)해 버리자 사람들이 제수용 과일을 구하지 못해 야단이었고 이 때 열곱의 이익을 남기고 팔아 떼돈을 번다.

허생은 다시 제주로 가서 갓(笠)의 원료인 말총을 온통 매점하여 이것 또한 열배의 이익을 남긴다. 돈 벌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돈을 벌수 있다는 양반의 능력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깔려있지만, 이런 상술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한말 정치 사회 실태를 기록한 윤효정(尹孝定)의 '한말비사(韓末秘史)'에 안동김씨 세력가의 종이었던 상쾌(上快) 이야기가 나온다

본래 마님의 잔심부름꾼이었는데 과일을 사오라고 시키면 자기돈 몇 푼 더 얹어 다른 종들보다 크고 좋은 것만 사다 바치는 등 잔꾀로 신임을 얻어 세도가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에 오른다.

집사가 되자 그 때부터 뇌물장부를 속이는 수법으로 재물을 빼돌려 육의전(六矣廛)에 제물전을 차리고 유명한 생산지에 가서 봄에 미리 나무를 사버리는 입목선매(立木先買)로 매점매석을 한다. 추석 무렵이 되자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고 그 때 조금 싼 값에 내놓아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공정위가 라면업체 4곳에 가격담합을 이유로 1,300억 원대 과징금을 물렸다. 1989년에는 공업용 쇠기름(牛脂)으로 라면을 튀긴 일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더니, 이번에는 국민식품이라는 서민들의 먹거리 라면값을 뻥튀겨 자기들 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했다.

라면은 어떤 식품인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한 끼 식량이요, 크는 학생들에게는 더없는 간식으로 사랑받고 있는데 이를 두고 대기업들이 가격장난을 쳤으니 허생이나 상쾌와 다른 게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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