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큰 전투를 치르고 난 뒤 군인들은 모두 지쳐 있었다. 지친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물이었다.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수통은 모두 비어 있었다. 경험 많은 소대장은 이 때를 대비하여 물을 아껴 두었다.

"나에게 아직 물이 남아 있으니 나누어 마시자"하며 소대장이 먼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다음 사람에게 물통을 돌렸다. 받은 사람이 한 모금 마시고 다음 사람에게 돌리고 그렇게 하여 소대원이 차례차례 모두 물을 마신 후 맨 마지막으로 물통은 주인인 소대장에게 돌아왔다.

그런데 물통을 받아든 소대장이 깜짝 놀랐다. 소대원이 모두 물을 마셨는데도 물은 조금도 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다음 사람을 생각하고 물을 마시는 시늉만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목말라 물을 찾던 사람들이었지만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만으로도 목마름을 잊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잔치가 있으면 집집마다 야자술 한 단지씩 가져오는 것이 마을의 오랜 전통이었다.

이번 잔치에도 가져온 술을 큰 통에 붓게 하고 추장은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잔에 술을 따르게 하여 축배를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들이 마신 것은 술맛이라곤 조금도 없는 맹물이었기 때문이다. 큰 술통에 나 하나쯤 술이 아닌 맹물을 부어도 아무도 모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모두 술 대신 물을 부은 탓이었다.

지난달 28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3대 종정(宗正) 진제(眞際) 스님의 추대법회가 열렸다.

이날 종정께서는 '쟁즉부족(爭卽不足) 양즉유여(讓卽有餘)'라 하셨다. 곧 '(만 냥의 황금도) 다투면 부족하지만 (서 푼이라도) 사양하면 남는 법이다'란 뜻이다. 제 것만 챙기려는 이 시대의 중생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다.

소학(小學)에 「평생토록 길을 양보해도 백 보에 지나지 않고, 평생토록 밭두렁을 양보해도 한 마지기를 잃지 않는다.」는 교훈이 새삼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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