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신의 배우이자 코미디언으로 인기가 높았던 지미 듀란테(1893-1980)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용사들을 위한 쇼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러나 너무 유명했던 그는 바쁜 스케줄 때문에 5분 정도의 시간은 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고 통보했다.

잠시라도 듀란트를 무대에 세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으로 여긴 기획자는 간단한 원맨쇼만 하고 내려가는 걸로 합의했다.

그날 무대에 선 듀란트는 짤막한 원맨쇼가 끝나고도 내려오지 않고 공연을 계속했다. 10분이 지나 무려 30분을 넘기고서야 무대를 내려왔다.

쇼 기획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듀란트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아무 소리 없이 무대 맨 앞쪽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참전용사를 가리켰다.

두 사람은 전쟁에서 팔을 한쪽씩 잃었는데 한 사람은 오른쪽 팔을, 또 한 사람은 왼쪽 팔을 잃었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남은 손바닥을 서로 부딪쳐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한 손만 가졌다고 박수를 못 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저 모습에 감동을 받아 쉽게 내려올 수 없었답니다."

지난해 11월 제24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IDFA) 장편부문에서 한국 최초일 뿐 아니라 아시아 최초로 대상을 수상한 '달팽이의 별'은 느릿느릿 세상과 소통하는 시청각 중복 장애 남편과 어린아이만한 키로 세상을 살아가는 척추 장애인 아내의 일상을 담은 영화로 이번 주 3월 22일 개봉된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남편의 손등에 달팽이의 촉수처럼 오직 손가락 끝으로 아내가 점자를 찍어 대화하는 '점화(點話)'를 통해 세상을 보고 듣는다. 그들의 언어방식으로 나누는 삶의 이야기는 모든 세상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가장 값진 것을 위해 잠시 눈을 감고, 가장 참된 것을 위해 잠시 귀를 닫고,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해서 침묵 속에서 기다린다'는 이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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