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줄다리기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마을 단위로 열리는 제의(祭儀)면서도 유희(遊戱)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다는 점에서는 제의고, 줄을 제작하는 데서부터 줄다리기가 끝날 때까지 주민들이 웃고 떠들며 억눌려왔던 감정을 발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놀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으나 중부 이남을 중심으로 벼농사를 많이 하는 지역에서는 아직도 여러 곳에서 대보름 행사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줄은 짚으로 만든다. 행사 한 달 전쯤부터 집집마다 짚을 추렴하여 사랑방에 모여 새끼를 꼰다. 그렇게 만들어진 줄을 높은 가지에 걸어 놓고 여러 개를 꼬아 굵게 만든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지름이 무려 1m 정도의 엄청난 크기의 줄이 된다. 줄이 크고 무거워 그대로 당길 수 없기 때문에 지네발처럼 곁줄을 만들어 거기를 당긴다.

줄은 초등학생들 운동회 때처럼 한 개의 통줄이 아니라 암수줄로 구분하여 만든다. 암줄의 머리부분에는 구멍이 있어 그 사이로 숫줄의 머리를 끼우고 비녀목으로 빗장을 채운다. 영락없이 남여가 결합하는 모양새다. 비녀목을 끼울 때 한번 만에 꽂는 게 아니라 일부러 헛질을 하면 구경꾼들이 성적 농지거리를 하면서 한바탕 웃는다. 고장에 따라서는 비녀목을 끼울 때 성행위 때처럼 민망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줄다리기는 보통 하루 종일 걸린다. 빨리 승부를 내지 않고 밀고 밀리면서 여유로움을 즐긴다. 마지막 승부 때말고는 줄을 당기다가 쉬기도 하고, 술도 한잔하고, 볼일도 본다. 승리는 언제나 암줄이다. 암줄이 이겨야만 풍년이 든다는 속신을 믿는다.

여성을 생산의 상징물로 여기는 유감주술 전통 때문이다. 여자들은 남정네들을 부지깽이나 빗자루로 때리면서 줄을 당기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도 허락된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면 줄은 마을 입구에 있는 액막이 돌이나 당산나무에 감아둔다.

줄은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생명의 탯줄이고, 줄다리기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성(性)의 제의며, 화합과 소통의 대동 굿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