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에 혼(魂)이나 영(靈)이 존재한다는 우주관을 일컬어 애니미즘(Animism) 곧, 정령신앙(精靈信仰)이라 한다.

원시적 발상이라고 하지만 과학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만일 어떤 물체에 인격을 부여했다면 거기에는 음양의 조화가 있기 마련이다. 과일나무는 열매를 생산하기 때문에 당연히 음(陰)인 여자로 보았다. 여자의 생산은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양(陽)인 남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풍성한 과일을 생산해 내기 위해서 혼례라는 상징적 행사를 치르게 되는데 이를'나무시집보내기' 한자어로는 가수(嫁樹)다. 전라도에서는 나뭇가지에 저고리를 걸쳐두었고, 경상도에서는 감나무 밑둥에 치마를 둘러놓았다.

그러나 대개는 여자의 사타구니와 닮은 나뭇가지 사이에 남자의 성기를 닮은 길쭉한 돌을 끼워 넣게 된다.

나뭇가지에 돌을 끼워 넣으면 가지가 위로 보다는 옆으로 낮게 벌어져 햇빛을 많이 받게 되고 따라서 광합성 작용이 활발해져 열매가 많이 열린다는 과학적 사실을 옛사람들은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유풍에 대한 기록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정월(正月) 상원조(上元條)에 나무시집보내기는 섣달 그믐날 밤·설날·정월 보름날 가운데 어느 날 해도 좋다고 했지만 우리의 세시풍습으로는 대개 정월 대보름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추나무는 음력 5월 5일 단오에 행하므로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는 말이 별도로 있다.

은행나무의 경우에는 암수가 같이 있어야 열매를 맺는데 간혹 암나무가 혼자 따로 있을 때에는 은행나무에 여성의 성기를 닮은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꼭 맞는 나무토막을 끼워주는 유감주술도 대보름에 행해졌다.

자손의 번창이 남녀의 혼인에서 비롯되듯이 과일나무에도 시집보내는 농경의례는 해학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냄새가 풍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