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고현 향기로운치과 원장

'악화' 치과의 득세…'양화' 치과 폐업 내몰려
치료계획 직원에 일임, 과잉 진료 양산…의료소비자 피해만 지속적으로 늘어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가격은 같으나 품질에서 차이가 있는 경우, 경쟁에 의해 우수한 품질의 상품이 열등한 것을 제거하게 됩니다.

그러나 화폐에 있어서만큼은 그와 반대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 그레샴이 주장한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법칙입니다.

16세기 유럽에서는 동이나 은이 주요 화폐였습니다. 이 무렵 정부는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따금 질 낮은 화폐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즉 10원짜리 은화에 10원 가치의 은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데 5원어치의 은만을 함유한 채 10원짜리로 유통시킨 것입니다. 사람들은 5원의 가치를 지닌 은화(악화)는 사용하면서, 10원 가치를 지닌 은화(양화)는 집에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결국 악화가 양화를 몰아낸 꼴이 된 것이지요.

최근 몇 달간 치과 관련된 이야기가 언론에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만 나열해 봐도 △네트워크 치과의 과잉진료 △발암 물질 사용 논란 △국정감사에서 유디치과에 대한 질타 등입니다.

치과 관계자가 아닌 분들이 보기엔 매년 붉어져 나오는 '가십'거리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치과계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1만 여개의 일반치과 대 100여개의 유디치과와의 싸움입니다. 거제 지역에는 유디치과가 아직 없기에 어떤 곳인지 잘 모르는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유디치과에 얽힌 이야기는 무척 많지만, 한마디로 표현해서 '악화'입니다.

1만 여개의 기존 치과 중에도 유디치과와 비슷한 행태로 운영하는 '악화'가 다수 포함되어 있겠습니다만, 아직 절대 다수는 '양화'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악화'치과들이 득세하여 '양화'치과들을 몰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가 갈수록 '양화'치과의 폐업율이 증가하고, '악화'치과의 수가 급증하면서 언젠가는 정리하고 넘어가야할 일이 이제 시작된 것입니다.

일반 가게에서 사장이 모든 일을 다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직원을 둘 필요가 없지요. 치과도 마찬가지인데, 직원 손을 빌려서 치료를 할 수 있는 항목이 여럿 있습니다만 일반 가게와는 다르게 반드시 치과의사가 해야 하는 치료 항목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진단과 치료계획 수립입니다. 충치가 몇 개인지, 어떤 것을 치료해야 하고 어떤 것은 지켜볼 것인지 등은 지식와 경험에 의해 판단할 수 있는데 치과의사가 아닌 자가 판단해서는 안되지요. 당연시 되는 이런 규칙을 '악화'치과는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과에 갔더니 간호사가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치료하라라고 하더라"라는 말을 가끔 듣을 수 있습니다. 이는 진단과 치료계획 수립을 직원에게 일임한 경우이며 이런 과정에서 '과잉 진료'가 양산될 수 있습니다.

다른 예는 비가역적 치료를 직원에게 일임하는 것입니다. 한 번 잘못 시술하면 돌이킬 수 없는 중요한 시술 과정이 있는데 이는 반드시 치과의사가 치료해야 합니다. 충치 제거, 레진과 아말감 충전, 보철물 영구접착 등이 그 예가 됩니다. 해당 치과의 원장은 많은 돈을 벌고 몇 년 후 자리를 뜨면 되겠지만, 환자분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악화'치과는 유디치과만을 일컫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몇 년간 지속적으로 목격한 내용인데, 모 치과에서 오신 환자분들의 상당수가 과잉진료를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 두명이면 모를까,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확인한 내용이니 그 치과는 '악화'치과인 것이 분명합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의료소비자인 환자분들이 '양화'와 '악화'를 구분하는 눈을 가지시고, '양화'를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아직은 '양화'가 숫적으로 많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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