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석 칼럼위원

요즘만의 일이 아니고 육십년도 훨씬 지난 케케묵은 것이지만 늘 우리를 고통스럽게하는 병폐가 있다. 진보와 보수라는 얘기다.

엊그제 부산영화제 때문에 지나는 거리에 물대포가 나르고 비좁은 도로가 차단되면서 영문을 모르는 내게 어느 언론사 간부가 '저 애들이 희망버스라는 일을 한다' 고 일러주면서 단숨에 진보라는 성향을 설명해간다.

배추밭 벌레를 잡기 위해 벌레만을 소탕할 것인지, 아예 벌레 묵은 배추밭을 뽑아 버려야 옳은 것인지를 고심하는 질서유지자들의 갈등이 계속된지도 벌써 세기가 가까운 일이지만 소위 진보사상에 물들었던 집안어른을 둔 탓에 가계가 기울만큼 질곡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경험을 가진 필자로서도 아직 혼돈스러운 문제의 하나다.

물론 진보라고 일컫는 말 속에는 종북세력이라고 칭하는 이른 바 '빨갱이족'부터 온건한 사회개혁세력까지 망라되어 있고, 보수라고 칭하는 세력에도 권력형 해바라기족부터 친일의 때깔을 벗어나지 못한 수혜족과, 맹목적 국수주의자들이 섞여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여의도정치와 지방자치까지 망라하여 선거가 빈번하고, 학교와, 이웃과, 모든 지인들이 선거의 척을 지고 갈등하는 마당에 니편 내편을 가르는 가장 손쉬운 방편이 보수와 진보라는 얼굴이고 그런 덧칠을 해야 싸움이 커질 법하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이런 보수 진보의 갈등이 깔려있고 자칫 어느 편을 옳다 그르다를 번갈아 나무라치면 회색분자거나 이중론자로 매도당하기가 십상이다. 그러다가 가끔 자신을 향해 '넌 대체 어느 편이냐'고 물으면 더욱 난감해진다.

누구나 다 갖고 있는 보수와 진보를 편가르는 질문 자체가 이미 그 갈등의 행태와 전염속에 빠져 들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타계한 스티브 잡스의 경우를 들지 않아도 인간은 누구나 보수와 진보의 접합으로 살아가고 있고 이것은 변화의 끊임없는 요구와, 기존의 가치고수라는 갈등을 동시에 드러내는 삶의 현상일 뿐이다.

냉전시대의 대립적 사상을 기저에 두고 있다고 하지만 필자와 같이 피해의 기억조차 이미 초월하여 민주사회라고 교육 받은 인간복지의 공동체를 중시하는 현실에서 '아이들의 놀이 다툼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는' 그런 좌우 대립이나 논쟁은 이제 제발 그만 두라고 애원하고 싶다.

인류를 진보케하는 힘이 진보라는 세력에 있는 게 아니라 변화를 스스로 창출하는 개인의 능력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역사나 조직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주체 없는 가담에 있는 게 아니라 역사나 조직의 진실과 가치를 공유하는 개인의 정의와 선택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라면 한 발짝을 나가기 전에 두 발짝 쯤 물러 서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색하는 습성부터 기르고 실천하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할 일이다.

곧 선거의 바람이 다시 소용돌이치고 온갖 갈등의 칼끝이 타인들의 심중을 겨눌 것이다. 그 바람이 부는 동안이라도 우리들 마음 속에 늘 뒤바뀌는 진보와 보수의 논쟁에 대한 선택이 공약을 함부로 외치는 후보에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용기와 정의 속에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 나가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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