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칼럼위원

▲천창수 송진교회 목사
어떤 것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견해는 서로 다를 수 있다. 두 사람이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한 사람은 진흙을 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하늘의 뭇 별들을 본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에서 다른 각도의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성도는 믿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고 말씀한다. 우리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매여 일희일비 하며 사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성도의 삶인 것이다.

미디안의 압제에서 7년 동안 고통을 당하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다.

미디안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던 기드온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가서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고 말씀하신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구원할만한 힘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행여 미디안 사람들 눈에 띌까 무서워서 타작마당이 아닌 포도주 틀에 숨어서 밀을 타작하던 사람이다. 그의 가문도 약했다. 뒤에서 배경이 되어줄 든든한 가문이 아니었다. 이런 기드온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하나님은 가서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말씀하실까?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비록 기드온은 힘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힘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배경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기드온이 하롯이라는 샘 곁에 진을 쳤을 때 기드온의 군사는 32,000명, 미디안의 군사는 135,000명이었다. 게다가 미디안에는 낙타가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았다. 기드온이 믿음으로 일어섰지만, 적군의 진영을 바라볼 때 두려웠다. 떨렸다. 그들이 진치고 있는 하롯이라는 곳은 그 지명이 '두려워 떤다'는 뜻이다. 기드온의 군사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기드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의 군사가 너무 많다고 하신다. 그래서 돌려보내라고 하신다. 그래서 다 돌려보내고 남은 수가 300명이었다.

이 300명으로 어떻게 135,000명의 미디안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강력한 낙타부대를 앞세운 미디안 군을 말이다.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기드온은 불가능한 현실 앞에 무릎 꿇지 않고 믿음으로 나갔고, 300명으로 135,000명을 무찌르고 승리하게 된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자. 우리를 낙심케 하는 현실이 아니라, 우리의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해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자. 성도는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한계 앞에 무릎 꿇지 말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살자.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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