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원 칼럼위원

지난 6월19일은 옛 마산시의회(현 창원시 의회)에서 '대마도의 날'로 제정한 날이다. 이것은 일본의 시마네 현에서 2월22일을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면서 소위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것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 만든 날이다.

6월18일 부산에서 출발하는 8시40분 배를 타기위해 우리 일행은 6시에 거제 박물관앞에서 출발했다. 히타카츠항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항구에서 우리를 환영하는 작은 행사를 보았다. 깃발을 흔들고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인 듯 한 모습의 중년부인들이 있었다.

동행한 황백현 박사에게 물었더니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항로가 폐쇄되고 거의 3달 만에 한국인들이 입도하는 것을 환영하는 행사라고 한다.

대마도의 관광객은 95%정도가 한국인이며, 따라서 지역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한다.
독도도 그러하지만 대마도 역시 우리 역사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섬이다. 거제도 면적의 1.7배에다 인구 약 3만7,000명, 부속도서 102개 정도라는 간단한 상식 이면에는 우리의 땅이라는 깊은 역사적 사실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서기 1420년 세종2년 윤 정월 10일에 제8대 대마도주 도도웅와는 가신인 시응계도를 보내 아래와 같은 내용을 전달한다. '저희 섬, 대마도는 토지가 척박하고 생활이 곤란합니다. 섬사람들이 거제도 등의 섬에 들어가서 살도록 해 주십시오. 그곳에서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호위하고 농사를 지어 수확을 거두면 세금을 내면서 안심하고 살아가도록 해 주시고, 거둔 세금은 저희 대마도 사람들에게 주시어 나누어 쓰도록 해 주십시오. 제가 직접 폐하의 어전에 엎드려 아뢰어야 마땅하오나, 친척들이 저의 대마도주 자리를 빼앗으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자리를 비울 수가 없기에, 부득이 가신을 보내어 삼가 말씀올립니다. 아뢰올 말씀은 저희 섬 대마도를 조선에 의탁하오니, 법령에 따라 조선의 도 산하의 주·군에 편입시키고, 그 명칭과 관인을 하사하여 주시면, 신하의 도리를 지키어 충성을 바치고 명령에 복종할 것을 맹세하면서 각서합니다.'

이에 대해 조선에서는 1420년 윤 정월 23일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낸다. '가신이 가져온 각서를 보니, 대마도주인 도도웅와가 그 동안의 여러 가지 잘못한 점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면서 우리 조선의 신하가 되고자하는 뜻을 자세히 알았으며, 돌아온 우리 사람들과 너희 측에서 보낸 선물은 이미 자세히 윗전에 말씀드렸고 상감께서 쾌히 윤허하심은 가히 너희 섬 대마도의 홍복이라 생각한다. 식량이 부족한 대마도로 돌아가면 굶주릴까봐 이미 우리나라의 여러 곳에 분산하여 먹을 것과 입을 옷가지를 충분히 주고, 농업에 종사하면서 안심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대가 요청한 바를 검토한 결과 대마도는 우리나라 경상도 산하에 두기로 했다. 앞으로 경상도 관찰사의 지시에 따르고, 보고 또한 관찰사에게 하도록 하라. 상급관서에 보고하지 않은 채 직접 중앙부처에 보고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리고 관인은 종씨 '도도웅와'라고 새겨 선물과 함께 보낸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가지 조치가 함께 내려 졌다.
우리가 그들을 침략한 것도 아니고 그들 스스로가 조선의 신하가 되고 조선의 통치를 받는 땅이 되고자 한 것이다. 이 후부터 1868년 까지 대마도주는 우리정부로부터 관인을 하사받아 사용한 기록이 나온다.
현재 발견된 지도 중 1402년의 '혼일강리역대국지도'에서부터 '팔도총도',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 1800년도 초기의 '조선 팔도 통합도',  1861년의 '대동여지전도' 등 당시에 발행된 모든 지도에서 대마도는 우리의 땅으로 표시되어 있다.

일본의 1868년 명치유신 이후에 우리의 국력이 쇠약해 진 틈에 대마도주는 살기위해 일본 편에 붙는다. 그리고 해방이후에 대마도의 반환을 위한 여러 노력이 있었으나 아직은 국제적인 힘이 일본에 미치지 못해 일본의 땅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로 볼 때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우리에게 속해 있다.

'대마도의 날'을 정함은 단순히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것에 대한 감정적 대응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대마도의 날'로 정한 6월19일은 대마도인들도, 우리를 제외한 다른 한국인들도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대마도의 날'을 제정한 창원시 의회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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