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복 옥포 자향한의원 원장

가슴 답답하거나 두통·어지러움 유발
남성보다 30∼60대 여성에 많이 발생
침구·한약치료 효과…호흡운동도 도움

최근 수년 사이 K-pop이나 유명한류스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만든 뮤직비디오가 SNS를 통해 알려지는 등 한국의 문화와 생활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한류가 형성되기 훨씬 전에 한국의 문화 중 하나로 소개된 질환이 있다.

'화병(火病)'은 영문표기가 'hwa-byung'으로 1996년 미국정신과협회에 문화관련증후군으로 등록되어 있다. 즉 화병은 한국의 문화와 연관된 톡특한 질환으로 인정받아 그 표기가 한글발음 그대로 등재가 된 것이다.

 화병은 울화병(鬱火病)의 줄임말이기도 한데, 말 그대로 화가 꾹 눌리고 뭉쳐서 생기는 병이다. 이 말은 원래 중국 명대(明代)의 명의인 장개빈이 가장 먼저 사용한 말로, 조선시대에 전래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고유의 독특한 질환명이 된 것이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막힘 △얼굴이나 가슴에 열감 △억울하고 분한 감정 △두통이나 어지러움 △잠을 잘 못 잠 △입이나 목이 마름 △급작스럽게 화 또는 분노의 폭발 △허무함 △두렵거나 깜짝깜짝 놀람 중 다섯 가지 이상이면 화병으로 진단한다.

화병이 단순히 마음의 병인 것 같지만 여러 가지 신체 증상을 동반하는데, 우울감, 식욕 저하, 의욕상실, 불면 등의 우울 증상 외에도 피곤하고 나른함, 호흡 곤란이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심계항진, 온 몸이 쑤시거나 따끔거리는 통증 또는 명치에 뭔가 걸려 있고 가슴속이 타들어가는 느낌 등의 신체 증상이 동반되어 나타난다.

실제 적외선체열진단기(DITI)를 이용해 화병이 있는 여성을 촬영해보니 가슴 쪽의 체온이 더 높아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병의 이름과 증상이 잘 맞는다.

화병은 1차적으로 정신적인 증상이 나타나는데 환자 대부분이 사소한 일에도 짜증과 신경질을 내는 등 예민한 상태가 지속되고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억울함과 분한 감정을 자주 느끼는 등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진다. 이 외에도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불면증이 생기기도 하고 이유 없는 한숨을 쉬고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화병은 남성보다 30대 후반부터 5~60대 중년여성에게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에는 여성의 사회적 참여확대와 직장 내 남성들의 위축, 그리고 아버지 역할의 혼란 등으로 중년 남성들의 발병률도 높아지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특히 학업에 의한 스트레스가 많은 청소년이나 젊은층도 화병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 그 연령대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화병은 하루아침에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는데 특히 중년여성의 경우 갱년기가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화병의 발병 단계는 처음에는 정신적 충격과 함께 강한 분노가 생기는 분노기에 이른다.

이 단계에 다다르면 성격 경향에 따라 분노를 바로 표출하는 사람과 그대로 덮어두는 사람으로 나뉘게 되는데 분노를 바로 표출하는 사람에 비해 후자는 많은 갈등을 거치면서 화병의 경과를 밟을 가능성이 높아져 화병이 시작될 경향이 높다.

또 기억해 둘 만한 점은, 유방암과 갑상선암, 자궁암, 난소암으로 투병 중이거나 투병했던 여성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심적 스트레스 여부를 측정한 결과 조사 대상 중 85%가 화병이 의심되거나 화병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다. 즉 암과 같은 병들이 화병과 연관이 클 수 있다는 점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화병의 원인을 심장, 간 그리고 요즘의 스트레스에 해당되는 칠정상(七情傷)등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의원에서 화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침구치료와 한약치료가 널리 활용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담치료, 이완요법, 운동요법 및 호흡요법 등도 병행한다.

평소 화병 및 스트레스의 해소를 위해 백회혈과 태양혈·전중혈·내관혈·후계혈 등의 혈 자리를 누르거나 두드리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고 적절한 명상이나 단전호흡과 같은 호흡운동도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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