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의 원고지로 보는 세상 < 174>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한참 달리다가 잠시 멈추어 설 때가 있다.

그건 피곤함 때문이거나, 주변을 경계하고 살피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무 빨리 달리면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그런다고 한다.

이와는 다르게 아프리카에는 스프링복이라는 산양이 있다.

처음에는 양들이 평화롭게 무리를 지어 풀을 뜯다가, 앞쪽에 있는 양들이 풀을 다 뜯어먹을까봐 뒤쪽에 있던 양들이 조금씩 앞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그러면 뒤쳐지게 된 양이 또 슬쩍 앞으로 나서고 그러다가 어느 틈에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풀을 뜯는 일은 잊어버리고 단지 앞서기 위해 뛰기 시작한다.

드디어 모든 양들이 왜 달려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리다가 결국 낭떠러지 앞에서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하고 만다.

유행(流行·fashion)이라는 것도 그렇다.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이 택하는 사회적 동조현상을 유행이라 하는데, 나의 조건이나 필요와는 상관없이 남과 같이 해야만 앞선다는 착각이 바로 스프링복의 심리와 같다.

어미닭이 오리집에 갔더니 오리새끼가 물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이 부러워 어미닭이 집에 와서 병아리들에게 헤엄을 배우라고 수영학원에 보내는 우매한 짓도 스프링복의 심리일 뿐이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앞으로만 달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경쟁과 변화에 쫓겨 다른 사람보다 뒤쳐질까봐 조바심을 내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나마 세상을 돌아보고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여유다.

아무리 잘 달려도 그것이 무의미한 달리기라면 수영장을 기웃거리는 병아리 이상의 존재의미는 될 수 없다.

문제는 그걸 깨닫게 되는 순간 삶이 허무해지고, 삶의 허무는 우울증으로 이어져 왜 살아야하는지 심각한 의문에 쌓이게 된다.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하며 노래했던 황진이의 시가 오늘따라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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