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혜 계룡수필문학회원

새로운 것을 맞으려면 설렘이 앞선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해 첫날에 해돋이를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지나간 해는 간 것이기에 붙잡고 매달릴 수도 없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새해맞이를 위해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함께 새벽잠을 설친다.

젊든 늙든 나이에 관계없이 지나가는 것엔 아쉬움이 남고, 새로운 것엔 기대가 있어 설렘이 수반된다.

가는 해는 보내고 새해를 맞으려 광화문 앞엔 수많은 인파가 북적인다. 보신각 종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난 한번도 그곳 행사장에 가본 적은 없다.

텔레비전으로 중계하는 장면만을 지켜볼 뿐이다. 그 때마다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모여 있는 인파를 바라보며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배낭을 메거나 간단한 차림으로 산이나 바다로 떠나는 사람도 있다.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한 해의 안녕과 소원성취를 빌기 위해 산과 바다로 간다. 하지만 그들은 남들보다 먼저 해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는 해와 떠오르는 해.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 무엇이 다른가. 떠오르는 것은 시작이고 지는 것은 끝남이다.

잠을 설치며 기다리던 해가 구름 속에 몸을 감추고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운다. 구름을 헤집고 얼굴을 내밀자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러 댄다.

그리고 태양을 향해 기도를 올리며 자신의 소망을 빈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의 기도는 순수하고 간절하다.

바라보는 눈과 감고 있는 눈.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모습, 태양을 끌어안듯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

이 모두가 다른 모습이긴 해도 가슴 속에 들어 있는 마음은 소망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업의 성공을 바라고, 자녀의 합격을 소망하며, 가족의 건강을 빌기도 한다.

이 자리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기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좀 더 나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갈망하며 기원한다. 이 모두는 살아 있음의 증표이다.

몇 해 전, 우리 부부도 해맞이를 위해 바닷가 언덕으로 간 적이 있다. 인산인해다. 길이 막히어 초입부터 꼼짝 할 수가 없다. 차에서 내려 걸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은 가파르다. 오르느라 숨은 차올랐고, 힘이 들었다. 아직 어둠은 천지를 누르고 숨죽이고 있었다.

그보다 더 무겁게 사람들의 설렘이 주위를 덮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렸으나 해는 우리 앞에 모습을 선뜻 내놓지 않았다.

수줍은 시골 처녀처럼 구름 속에 숨어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살짝 드러냈다 숨고, 반만 보여주고 이내 사라졌다. 사람들은 아쉬움에 선뜻 자리를 털고 일어서지 못한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그리고 내년을 기약하며 하나 둘 자리를 떴다.

그 날 이후로 우리 부부는 해맞이를 가지 않은 것 같다. 빌 소망도 없고, 다짐할 각오도 없어서가 아니다.

어제 떠오른 태양과 오늘 떠오르는 태양이 같다는 생각에서다. 어찌 보면 마음도 몸도 늙어버렸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 없이 산다는 것은 죽은 삶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고 그런 감각을 유지하며 산다고 자부한다. 다만 섣달 그믐날 뜨는 해와 정월 초하룻날 솟는 해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늘 같은 것인데, 사람들은 엄청난 차이를 두고 바라보고 있다. 오늘 떠오른 태양도 내일 아침이면 어제와 다름이 없이 동쪽에서 떠오를 것이다.

매일 아침 내 가슴에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다짐하며 살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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