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윤성원 거제불교 거사림 교양대학 2기 학생회장
인간은 이중구조로 돼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이요, 또 다른 하나는 마음입니다. 육신은 사대(四大:地, 水, 火, 風)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환원됩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이걸 우리는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나지만 가짜 나인 가아(假我)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진짜 나입니까. 가짜 나와 상대되는 것, 그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마음을 찾아서 깨친다고 했는데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는 마음을 어떻게 접근해 깨칩니까. 그래서 고인(古人)들이 마음으로 마음을 찾으려고 하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비유컨대 물은 모든 것을 씻지만 물 자체는 씻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찾을 수 없는 마음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말도 문자도 생각도 일체 접근을 불허합니다. 따라서 직관을 통해서 찾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3,000년 전 직관의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역대조사들이 마음과 마음으로 전한 것, 중국에 와서 달마대사가 재창조한 것이 바로 간화선입니다. 간화선이라는 것은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화두는 무엇일까요. 바로 의심덩어리입니다. 이 의심덩어리를 깨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을 깨치는 근본자리입니다.

버리는 경계를 무심이라고 했습니다. 물이 흘러가다 멈추면 썩게 됩니다. 우리가 무심한 경지에 안주해 이것이다 하고 주저앉게 되면, 비유컨대 깊은 귀신 굴에 떨어져서 나올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 어느 외도가 와서 "아주 훌륭한 성자라고 들었습니다. 제 마음이 괴로우니 한 말씀 해 주십시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끝까지 말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러자 그 외도가 "제가 질문한 요지에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말하고 갔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한마디도 안 했지만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설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과의 인연이나 근기가 마주치면 가능한 일입니다. 신심을 견지하고 꾸준히 정진하면 구경에 도달한다는 믿음 말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막막한 사막을 걸어야만 합니다. 걸어가다 보면 회오리바람을 만나 세상을 떠날 수 있고, 독충이나 맹수를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도 있으며, 작열하는 태양에 일사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문의 본분은 수행입니다. 수행을 위해 집과 가족, 모든 것을 버리고 혈혈단신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걸어가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바쳐 한 번 해보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도 나무는 아래서 위로 자랐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렀습니다. 지금도 나무는 위로 자라고 물은 아래로 흐릅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인간이 부처가 됐다는 것, 마음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 깨칠 수 있다는 것, 그러면 삼계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생사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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