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위원 김호일/거제문화예술회관장

2011년에 들어 줄리엣 헤슬우드(Juliet Hes lewood)가 쓴 책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린 어머니 초상화들"(Mother : Portraits by 40 Great Artists)을 읽었다. 근래에 보기드문 역작이었다.

화가들이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릴 무렵이면 어머니들은 이미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젊은 모습보다는 오히려 나이든 과부로 그려질때가 많았다.

대형 청동 주물 작품들로 유명한 조각가 헨리무어(Henry Moore 1898-1966)는 왕립미술대학에서 조각을 공부 하기로 하고 장학금을 받았지만 드로잉에 오히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대영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 문화권의 조각을 감상했고 이전의 아메리카 미술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는 평생 여성상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관심은 그의 모자상 뿐 아니라 영국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산과 골짜기 절벽과 동굴의 형태를 취한 조각에서 나타난다.

무어는 자기 어머니를 "완벽하게 여성적이고 모성적"이라고 묘사했다. 요크셔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열덟 남매중 일곱 번째 자식이었는데 그의 손 아래 동생은 일찍 죽었다.

아버지는 탄광의 광부였고 어머니의 가사 노동은 체력적으로 힘든 것이었다. 부모는 그가 고달픈 노동자의 삶을 살지 않게 하려고 학교에 보냈고 그는 일찍부터 미술 특히 조각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관절염과 좌골 신경통으로 고생하던 그의 어머니는 어린 헨리에게 아픈 엉덩이를 주물러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훗날 그는 어머니의 딱딱한 뼈대 위로 부드러운 살이 느껴지던 이때의 경험이 조각가가 되고 싶은 마음을 북돋워 주웠다고 회고했다.

1927년 스케치한 그의 어머니의 초상화는 마치 어머니가 조각작품 모델이기나 한 것처럼 커다란 체구가 다 드러나게 그렸다.

연필로 긋고 문지른 힘찬 윤곽선에는 한달음에 그은 듯한 유연한 필치들이 담겨있다. 그녀는 대담하고 인상적이어서 기념비적으로 남아있다.

"어머니는 내게 절대적이고 확고한 무엇, 평생 의지할수 있는 피난처 같은 분이었다"라고 무어는 회고했다.

"어머니가 외출하시면 행여 어머니가 돌아오시지 않을까 봐 겁이나곤 했다. 그러니 내가 조각한 여성들이 젊은 여자가 아니라 원숙한 여자의 모습인것도 놀랄일이 아니다" 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헨리무어는 효자임에 틀림없다.

피카소 역시 "자기의 자신감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다"고 단언한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머니는 위대한 인물이다.

한국에서도 헨리무어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서울의 남산에 자리 잡은 대우 힐튼호텔 로비에 가면 헨리무어의 "여인와상"이 있다 1983년 필자가 힐튼호텔의 개관 디자이너로 근무할 당시에 구입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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