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운 본지 칼럼위원

윤병운 거제시 농업경영인 연합회장
'고기 없는 밥상을 받더라도 대나무 없는 집에서 살지 말아야지,
고기 못 먹으면 사람 수척해지지만 대나무 없는 집에 살면 선비 俗되다네.
몸이 수척하면 살 찌울 수 있어도 선비 俗되면 고치지 못하네….

소식선생의 시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나무는 그 기상이 고상하여 군자의 덕을 닮았다고 해서 예로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뿌리는 견고하여 덕으로 삼고 속은 비었으나 줄기는 곧으니 텅빈 속은 도로써 채우고 곧은 줄기 본받아 뜻을 세울 수 있기에 군자들이 정원에 심어두고 즐겨 감상하였다고 한다. 선비들이 즐겨 그리는 사군자에도 대나무가 포함되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이리라.

그런 대나무가 한 고을을 감싸 안고 있으니 바로 거제 하청포구 일대다.

학자와 교사, 문인들이 많이 배출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향인들은 자랑삼아 얘기하곤 한다. 사시사철 푸르름을 간직한 하청, 그곳에 가면 지천으로 늘어진 것이 대나무 숲이다.

이 대나무의 이름이 맹종죽이고 그 어린 순이 맹종죽순이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재상 맹종이 죽순만을 찾는 병든 노모를 위해 한겨울 대밭에서 기원한 결과 그의 효성이 하늘을 감복시켜 눈 속에서 죽순이 돋아났다고 해서 맹종죽으로 불린다고 전해진다.

이 맹종죽이 거제에 들어온 것은 평생을 거제 농촌의 자급자족 및 부흥에 앞장선 소남 신용우 선생께서 1927년 일본 산업시찰시 거제 기후에 적합한 맹종죽 세 그루를 가지고 귀국하여 두 그루의 생육과 재배에 성공하면서부터이다. 이후 하청 포구의 모든 잡나무 야산이 대나무 숲으로 탈바꿈되었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70년대는 보릿고개는 없었지만 그래도 쌀의 위력이 대단한 시기인데도 선친께선 논하고도 바꾸지 않을 거라 했을 정도로 고소득이 보장되는 농산물이었다. 솎아내는 대나무야 땔감 정도였지만 이른 봄부터 올라오는 어린 순인 죽순은 당시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생계가 전부이던 시절 대나무의 기상을 새겨 볼 겨를은 없었지만 그것은 우리 가족의 삶을 책임지고 보장해 주던 것이었고 그 속에서 자라고 철들었다. 하지만 농업기술의 발달로  하우스에서 재배된 봄나물이 한겨울에도 넘쳐나고 게다가 값싼 수입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어쨌거나 대나무는 그 기상만으로도 귀한 대접을 받아 마땅할 터인데 지금은 하청의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거가대교가 개통되어 거제의 북부권이 술렁이는 지금 하청의 대나무도 다시 한 번 부활할 것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추락할 것인지 그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거제시 농업기술센터와 거제 맹종죽 영농조합법인이 합심하여 거제 맹종죽 관광체험상품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청면 실전리 와항마을 인근 제석산 일대에 맹종죽을 중심으로 한 테마공원과 죽림욕장을 조성한다고 한다. 올해부터 3년간 국비와 지방비 10억 원씩 총 30억이 투입된다.

맹종죽 숲을 중심으로 제석산 일대에 대나무조각을 전시하고 체험할 수 있는 '예술의 숲'과 '놀이의 숲', 산책로가 깔린 '치유의길', 편백나무로 둘러 쌓인 '명상의 숲,' 돌탑을 쌓아올린 '소원의 숲'등 5개 주제로 공원을 조성한다고 한다.

또한 맹종죽순을 지리적 표시제로 등록해 지역특산물로 육성하고 브랜드를 개발하는 등 맹종죽을 이용한 다양한 상품을 열정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며 거가대교의 개통과 함께 거제도의 북부권이 부산광역권에 더욱 가까워진 지금 보다 공격적인 마케팅과 함께 옛날 하청대나무의 명성을 하루빨리 되찾고 죽순생산 농가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한다.

봄이면 우리 유치원생들이 죽순을 캐는 체험활동과 함께 대나무 숲에서 그 대나무의 기상을 몸으로 체득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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